중국과 중국 사람들을 새삼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 주말 상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만 봐도 그렇고,모든 나라가 심한 경기침체를 앓고 있는 가운데 유독 중국경제만 7%대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니 더욱 그러하다. "이제 미국배우기보다 중국알기가 한국경제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앨리스 암스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석좌교수의 충고나 "중국경제 급성장에 대비하지 못하면 한국은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의 경고는 이래저래 피부에 와 닿는다. 삼성 LG 등 주요그룹 총수들이 계열회사 사장 등 그룹수뇌진들을 대거 동반하고 잇달아 중국을 찾고 있는 것 역시 아마도 그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과연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길고 긴 세월에 얽히고 설킨 사연이 한둘이 아닌 게 한·중 관계지만,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중국인상(像)은 오히려 매우 간명하다. 김동인(金東仁)의 감자에 등장하는 왕서방,이효석(李孝石)의 분녀(粉女)에 나오는 왕가,그리고 뚱뚱이로 더 잘 알려진 양훈 주연의 영화 '비단이장수 왕서방'을 일관하는 캐릭터가 그것이다. 돈많고 음흉스러우며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이다. 또 한국여자를 탐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중국음식이 뛰어난 것은 그들의 민족성과도 관련이 있다는 일본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남의 눈만 즐겁게 할 뿐 실속이 없고,먹고 마시는 것은 자신이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뒤쪽으로 치우쳤다는 얘기였다. 과연 옳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없지만은 않지만,어쨌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중국인을 보는 눈도 우리와 통하는 일면이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바로 그런 중국인들이 기나긴 좌절을 딛고 일어선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가속도가 붙게 되면 다 그렇겠지만,지금까지 중국경제발전에 장애요인인양 받아들여졌던 것들까지 에너지가 되고있는 듯한 국면이기 때문에 더욱 놀랄만 하다. 5·4운동의 중심축이었던 후스(胡適)는 중국인들의 날카롭지 못한 분별력을 差不多先生(주인공은 의사에게 받아야할 수술을 수의사에게 받다가 죽는다)이라고 꼬집었지만,그런 중국인들의 터무니없는 대범함이 오늘의 중국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공산당치하에서의 자본주의 발전도 그렇고,이른바 한나라 두 체제(一國兩制)라는 구호아래 홍콩을 무리없이 포용하고 가는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두드러진다. 기업인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당헌개정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중국경제발전은 흔히 기대반 우려반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따져보면 우려쪽이 훨씬 클 것은 자명하다.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이 국내시장에서 중국제품에 밀려난 것은 이미 오래고 농수산식품분야에서도 중국산의 홍수로 심각한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것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경제발전 초기단계가 지나면 나타나게 마련인 계층간 갈등도 중국의 경우 우리처럼 빠르지도 심하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중국인 특유의 기질로 미루어봐도 그렇지만,다민족국가라는 점에서도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해안지방과 내륙지방간 경제력 격차는 엄청나다는 얘기지만 지역간 집단적인 갈등이 아직 이렇다할 정도로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천안문사태 후유증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갈등 때문에 중국경제 고성장에 곧 걸림돌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로 이어진다. 일본처럼 뛰어난 기술력도 없고,코스트면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는 점에서 우리경제는 어려움이 있다. 계속 늘어나는 국내기업의 중국투자도 긴 안목으로 보면 부메랑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이닉스반도체가 중국에 팔려가는 것을 걱정스럽게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기업경영에 대한 투명성요구나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도 그 나름대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겠지만,그것보다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본사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