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회사들이 하이닉스반도체의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잘만 하면 하이닉스의 구조조정에 긍정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냥 '무모한 생각'으로 치부해버릴 일만은 아닌성 싶다. 반도체설계회사들이 전용공장을 갖는 것은 숙원사업이기 때문에 공장확보에 대한 논의는 ASIC설계회사협회가 출범한 97년에 이미 시작됐다는 정자춘 협회회장의 설명이고 보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정 회장이 최근 공식적으로 밝힌 구상의 내용은 10여개 회원사들이 구미에 있는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팹(일관가공 생산라인) 공장 2개를 인수할 생각이며 인수자금 4억∼5억달러는 회원사 자체자금과 거래처,해외투자자,정부의 부품소재육성자금 등으로부터 조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제의에 대해 정부나 하이닉스 측은 설계회사들의 자금 및 운영능력으로 보아 무리한 구상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의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에 반도체 핵심기술을 넘겨주어야 할 형편이라면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전용공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내업체들에 매각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볼 일이다. 하이닉스는 지난 19일 기업설명회에서 반도체부문 매각을 통해 1조원을 조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면서 일부 공장을 중국에 매각하기 위해 산업자원부 실무선과 접촉한 결과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의 협상이 조만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생산라인까지 내놓아야 하는 절박한 하이닉스의 형편으로는 돈만 많이 준다면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긴 안목으로 한국 반도체산업의 장래를 내다볼 때 핵심 반도체라인을 중국에 넘겨주는 사태만은 피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특히 고부가가치산업인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기술은 헐값에 사고 팔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주문형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메모리 반도체보다 크고 앞으로도 그 비중은 더 커질 전망이다.그런데도 반도체 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가 이를 계속 해외에 의존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대만의 경우 ASIC회사들의 주문대로 생산하는 세계적 파운드리회사를 보유하고 있어 반도체설계회사들의 급성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구조조정을 미래산업인 ASIC산업의 육성 계기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는지,국가경제적 차원에서 모든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검토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