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도 시류에 따라 변한다. 정권 후반기면 당연히 정치색을 띤 농담이 많아진다. 그런 농담의 하나. "질문.'정권 말기에 접어들면 과연 어디서부터 청와대 말을 듣지 않을까' 답.'첫째는 법원(판사),둘째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공무원,마지막은 가신(家臣)이다'" 가신조차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권력누수의 순서를 말한 이 농담에는 '전직 YS때도 그러했고 현직 DJ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해설'이 따라 붙는다. 최근의 각종 스캔들을 보노라면 이 농담이 매우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공직사회. 출자총액한도 규제완화등에 대해 경제팀장 부처인 재정경제부가 유연성있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으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반대 일색이다. 부총리가 무엇이라 하건 아랑곳 없다는 식이다. 금융법령을 고치면서 재경부와 금감위 두 부처가 사전협의조차 제대로 갖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재경부는 부처협의를 했다고 주장하고 금감위는 무슨 소리냐며 맞고함을 지르는 것도 정권 말기 풍경화다. 젊은 판사들 수십명이 해묵은 관행을 쇄신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낸 것도 최근의 일이다. 법원은 자치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규율이 흔들린다는 법조주변의 지적도 많아진다. '레임 덕' 현상이 빚어지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가신들조차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검찰의 난맥상이 드러났고 그 와중에 신안그룹의 박순석씨가 전격 구속된 것은 가신들 내부의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설까지 있다. 평생을 같이해온 가신마저 통제되지 않으면 문제는 더 커진다. 경제가 안정적이거나 성장기조에 놓여있다면 공무원이 눈치보기를 하든,가신들이 차기를 노린 권력투쟁을 벌이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외 구별없이 경제가 매우 어려운 국면이다. 국정 최고권력이 본연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서산에 해가 일찍 기운다고 해서 새벽이 빨리 오는 것은 아니다. 허원순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