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우 < 우리기술 사장 dwkim@wooritg.com > 며칠 전 서초동 법원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듯 해서 널찍한 법원 뜰을 산책하고 있는데 꽤 유명한 문화계 인사 한 분이 지나갔다. 언제나 밝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분이 그날만은 무척 괴로운 안색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좀 망설이다가 "이곳엔 웬일로 오셨느냐"고 인사했다. 깜짝 놀라시더니 내 두 손을 꼭 쥐었다. "오늘 딸 아이가 이혼을 했어…" 주변에서 이혼하는 부부를 본 게 지난 한주만도 세 쌍이나 된다. 신혼여행 후 곧바로 이혼하는 경우도 있고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9백15쌍이 결혼하고 평균 3백29쌍이 이혼했다 하니 세 쌍중 한 쌍은 이혼한 셈이다. 예전에는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본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해도 이혼은 드물었다. 이혼을 못하게 하는 사회적 통제가 심하긴 했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인이 되신 일석 이희승 선생께서 어느 글에선가 당시 일본에 유학한 대학생들 사이에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버리고 신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선생께선 "결혼의 인연이란 소중한것이고 그러한 인연을 되새길수록 아내가 사랑스러워서 유행을 따를 수 없었다"고 쓴 것을 보았다. 선생께서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혼까지 이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 이혼한 사람,특히 이혼한 여성에 대해 은연중 내비치는 사회적 편견도 없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이혼 의사를 내비치는 것을 본다. 문제가 심각하면 해결책도 진지하게 찾아야 할텐데 최후의 선택안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은 부박한 사회의 반영인 듯하다.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두 사람을 결혼으로 이끌었던 그 깊고 아름다웠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또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소중한 가정에 대해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 보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전생부터 귀한 인연인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며 마음을 열어 보면 어떨까. 이혼을 앞둔 사람들만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