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이 고금리 예금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최대 10조원 규모의 비과세저축(신탁)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이번 수신경쟁은 앞으로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특히 수신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서울 제일 등 중위권 은행과 씨티 등 외국계은행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이들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객들이 한푼의 이자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 착안, 비용부담(우대금리 지급)을 안더라도 이번 기회에 수신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같은 외형확대 전략이 은행 경영에 얼마나 보탬이 될 지는 두고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고금리 경쟁 사례 =씨티은행은 지난 16일부터 내달 15일까지 6개월짜리 정기예금에 들면 0.5%포인트의 금리를 더 얹은 연 5%를 지급키로 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연 4.8∼4.9%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1년도 아닌 6개월짜리 정기예금에 0.5%포인트의 금리를 더해주는 것은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비과세저축 대체 상품인 '제일안전예금'을 연말까지 한시 판매한다. 이 상품의 금리는 정기예금 금리보다 0.2%포인트 높다. 최소가입금액은 1천만원으로 거액 고객이 주 타깃이다. 또 중도해지하더라도 기간별 약정금리(3개월 연 4.8%, 6개월 연 4.9%)를 받을 수 있는 유인책까지 내놓았다. 서울은행은 비과세상품의 만기자금을 재예치할 경우 정기예금에 0.3%의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따라서 1년제 정기예금은 연 5.5%가 된다. 수협은 한발 더 나아가 수협 고객 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의 비과세저축 고객이 수협에 비과세통장을 제시하고 돈을 맡기면 0.4%의 가산금리를 지급키로 했다. 대형 우량은행들도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택은행은 0.2%포인트 금리우대를 계획하고 있다. 조흥은행은 1천만원 이상의 자금을 한꺼번에 예치할 수 있는 'CHB자유예금'를 내놓았으며 재유치 고객에게 금액에 따라 0.2~0.5%의 금리를 우대해주고 있다. 한빛은행은 0.1%포인트, 외환은행은 영업점장의 전결금리를 대폭 올렸다. ◇ 우수고객을 잡기 위한 전략 =은행권의 이같은 고금리 예금유치 경쟁은 IMF 위기 등 금융불안기에 벌어졌던 외형확장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은행권에 현금이 남아 돌고 있고 증시침체 경기부진에 따른 기업대출 감소 등으로 돈 굴릴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중위권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유치경쟁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제일 서울 씨티 수협 등은 대형 우량은행들보다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금리우대 폭도 크다. 이들 은행의 수신증가 규모는 올들어 대형은행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생존기반이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중위권은행들의 판단이다. 서울은행 관계자는 "비과세저축 가입고객은 대부분 우수고객"이라며 "이들을 빼앗기면 수신기반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어 금리를 더 얹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수성(守成)' 전략이란 얘기다. 고객층이 얇은 외국은행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장사 잇속이 밝기로 유명한 씨티은행이 전격적으로 고금리 예금상품을 내놓은 것은 '지금이야말로 고객기반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금융계는 풀이하고 있다. 요즘같은 초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고객들이 소폭의 금리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 착안,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수신기반을 넓혀 놓겠다는 전략이다. 뉴브리지캐피털로 넘어간 제일은행이 그동안 강조한 '내실경영'과 달리 고금리 예금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김준현.장진모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