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부양책을 취재하던 기자는 혼란에 빠졌다. 행정부와 의회가 부양책을 논의한지 한달이 됐지만 아직도 구체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벌써 나왔음직한 대책이 아직도 '토론 중'이란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16일 정책혁신연구소(IPI)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아이디어만 나왔을뿐 구체적 방안을 도출하지는 못했다.이 자리에선 백악관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본이득세율 인하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발언이 오히려 공감을 얻어냈다. 경기부양책을 주제로 한 청문회와 토론회는 기자가 참석한 행사만 해도 벌써 5번이 넘는다. 상원 금융위원회는 테러 직후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과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불러 의견을 들은 것을 비롯 폴 오닐 재무장관도 출석시켜 행정부의 부양대책안을 추궁했다. 이런 정책청문회는 대부분 TV로 생중계된다. 민간연구소들이 주최한 토론회에는 일반인들도 적지않게 참석한다. 국회의원들도 이런 토론회에 적극 참여,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정책홍보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말미에는 으레 질의·응답시간이 마련돼 찬반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진다. 방송사들이 경기부양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 것도 수없이 많다. 신문들도 적지않은 지면을 할애,전문가들의 주장을 상세히 싣는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세금감면이 좋은지 아니면 재정지출확대가 나은지,항구적인 세율인하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잠정적인 세제혜택이 필요한지 등 백가쟁명식 토론과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지난 12일에는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외신기자센터에서 1시간 이상 계속된 강연과 토론을 통해 행정부가 구상중인 세금감면 확대방안 등을 강도높게 비판,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부양책 논의가 시작된지 한달.곳곳에서 계속되는 강연,토론 및 의회 청문회 등으로 부양책의 규모와 가능한 대책들은 촘촘한 채로 알갱이를 걸러내듯 충분한 여론 수렴과정을 거치고 있다. 형식적인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성급하게 정책을 내놓는 한국과는 참으로 다른 풍경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