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소외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으로 우리도 '노벨상 국가'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까지 과학 분야에서 한 명도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항공대가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얼굴을 동상으로 만들기 위해 교내에 동상 받침대를 세워 놓을 만큼 이 상에 대한 열망이 높은 우리에게 IBM 연구소는 한 모델을 제시해준다. IBM의 스위스 취리히 연구소는 21세기 핵심 기술로 각광받는 나노기술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이 연구소의 게르드 비닝 박사는 원자현미경을 발견,분자나 원자 수준에서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IBM연구소는 이 성과에 안주하지 않았다. 이 연구소의 왈터 플레처 박사는 "원자 현미경의 원리를 이용한 저장장치(스토리지)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발달된 기술을 활용하면 가로, 세로 1인치 크기에 20메가비트를 저장할 수 있지만 원자 현미경의 원리를 활용,내년말쯤 같은 크기에 5기가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시제품을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끈질기게 연구업적을 발전시킨 것이 노벨상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상의 의미를 배가시킨 셈이다. 실제 노벨상은 연구 성과가 발표된 후 10년 안팎이 지나야 상을 준다. 후속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큰 성과를 냈을 때 그 분야의 근원을 찾아 돌파구를 열어준 과학자에게 상을 주기 때문이다. IBM연구소는 또 현재 연구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연구비의 3분의 1은 아예 외부에서 조달한다. 기업 연구소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특허권만 확보할 수 있다면 연구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과학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것은 20여년에 불과하고 선진국에 비해 투자 규모도 훨씬 적다. 그러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우리 과학자의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노벨 과학상은 더이상 먼 미래의 꿈은 아니다. 취리히=김남국 IT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