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청소년 정서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대표적 예는 미국의 페인펀드(Payne Fund)연구다. 사회학자 허버트 부루머는 연구 결과 영화가 어린이의 성격과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선 지금도 국민의 78%가 미디어 폭력과 청소년 문제 사이에 '개연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실제 95년 주인공이 특별한 이유 없이 10여명을 죽이는 '내추럴 본 킬러'를 본딴 범죄가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할리우드 영화는 폭력과 살인 공장"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영화의 '유죄' 여부를 둘러싼 공방 끝에 연방대법원은 99년 이런 유의 폭력영화는 수정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여기에 99년 4월 콜로라도 컬럼바인 고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클린턴 정부는 '미디어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업중 급우를 살해한 고교생이 영화 '친구'를 모방했다고 말해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처럼 심각하진 않지만 우리 청소년의 폭력도 날로 흉포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건달과 양아치의 차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가운데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등 폭력물이 쏟아진다. TV드라마에도 툭하면 각목과 회칼이 난무한다. '친구'등 조폭영화 흥행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이 38.3%에 달한다고 한다. 영화란 사회상의 반영일 뿐이며 폭력과 범죄를 배우는 곳은 사회지 극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칼로 찌른 뒤 돌려야 고통이 커져 반항을 못한다'는 식의 대사는 섬뜩하다. 게다가 코믹하다는 이유로 폭력과 섹스 투성이인 작품 등급을 15세관람가로 낮추고 무자비한 살인장면을 반복하는 건 폭력의 끔찍함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고 죄의식을 약화시킨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이 대상일 때는 특히 그렇다. 모방범죄 때문이 아니라 모처럼 개화된 한국영화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쯤 정신을 차려야 한다. 홍콩 영화의 쇠락은 폭력물 위주의 자기복제 탓이라는 분석이 나와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