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 고려대 불문학 교수 > 내가 아는 한 여성 조각가는 이미 유명해진 그 작품보다도 다른 일로 더 인기가 있다. 작품과 사람이,모든 것이 펑퍼짐한 이 아주머니 조각가의 가장 큰 미덕은 남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고통스런 일을 당하건,기쁜 일을 맞이하건 맨 먼저 그에게 와서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그 조각가가 주로 듣게 되는 것은 비애와 울화와 근심이다. 대개는 예술계의 동료들이 찾아오지만,그녀에게 작품을 산 적이 있는 고객들도 걱정거리를 안고 온다. 선후배 동창들도 그녀에게 털어놓을 비밀이 있고,이웃사람들도 온갖 신산한 사정으로 그녀를 괴롭히고 싶어한다. 하루는 며느리가 찾아오고,그 이튿날은 시어머니가 찾아오고,그 다음날은 그녀들의 남편이고 아들인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는 그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아주 찬찬히 성의를 다 해 듣는다. 상대방의 말을 무시해 중도에서 잘라버리는 일은 물론 없고,안이한 판단을 내리거나 쓸데 없는 충고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적절한 간격으로 대꾸를 하고,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너무 흥분을 하면 차나 과자를 권하기도 한다. 때로는 손도 잡아 준다. 표정은 담담하지만 한결 같지 않다. 이야기 내용에 따라 양미간을 약간 찌푸리기도 하고 입술을 가볍게 깨물기도 한다. 기쁜 소식을 들을 때는 얼굴을 활짝 펴서 웃는다. 그 표정의 변화가 진실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도 듣는 그녀의 고통과 기쁨이 더 크고 더 깊은 것만 같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녀가 덧붙이는 일종의 코멘트는 매우 간결하다. 그래도 참 장하다….좀 더 기다려 볼 수밖에 없겠네….꽃도 많이 피었던데 이삼일 절에나 다녀오시지…. 대개 이런 정도다. 그러나 근심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올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의 아틀리에를 떠난다. 고통을 고통이라고,기쁨을 기쁨이라고 확인해 주는,어쩌면 간단할 수도 있는 능력이 그녀의 미덕인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상대방의 어두운 마음 속에 들어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의 전후사정을 잘 이해하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안이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면 자기를 억제해야 한다. 섣부른 분석으로 상대방을 기죽이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지식에 대해 과신하지 않아야 한다. 이 조각가가 찾아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쏟아야 하는 정신의 에너지를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다. 냉엄하고 무거운 돌덩이와 싸워 자기가 꿈꾸는 것을 만들기 위해 늘 생각하고 공부하고 작업해야 하는,하루가 일주일이라고 해도 모자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시간을 낭비하다니요?" 그녀는 약간 화를 내며 좀 길게 이야기했다.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남의 이야기를,특히 남의 고통을 듣고 있으면 마음 속이 깊어져 세상사에 이해가 생기고,자신의 삶이 비좁은 아틀리에를 벗어나 멀리 확장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로 인간으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언젠가는 내 고통도 남이 들어주지요" 내 직업이 문학과 관련된 것이어서 가끔 '시나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이 조각가 아주머니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한다. 문학은 고독한 사람의 이야기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고독한 사람도 있고,암담한 자리에서 믿기 어려운 희망을 발견해서 고독한 사람도 있다. 시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 고독한 고통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인간사는 갈수록 번화해져 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재에,병고에,사망에,모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고독한 고통과 희망을 서로 나누기 위한 품앗이의 일종이다. 시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고독한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세계의 필연적인 정신병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일일 수도 있다. hwanghs@kuccn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