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으로 유명인사가 됐던 피트 피터슨은 전 베트남 주재 미국대사.내년의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를 준비하던 그는 최근 출마포기를 선언했다. 테러사태를 보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국제사회 속에서는 주지사가 아니라 전직 외교관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는 게 불출마의 변이다. 여성으로는 미군의 최고위직에 올랐던 클라우디아 케네디 예비역 중장.버지니아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을 노리던 그도 선거운동을 아예 그만뒀다. "테러와 전쟁의 와중에 선거에 쓸 돈을 모은다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세계 최대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오린 스미스 사장.세계무역센터 구조현장에서 땀흘리며 자원봉사를 하는 직원들을 보고 "우리 직원들이 지금보다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평소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이 제일 훌륭하다"고 말해온 그다. 지난달 11일 테러발생 바로 전에 경비절감을 위해 직원을 해고하려다 해당직원과 마찰을 빚었던 존 라마포라는 뉴욕시의 치과의사는 그 직원을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직원과 마음을 합쳐 좀더 열심히 일해 돈을 더 벌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테러와 보복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보복전쟁을 찬성하는 등 '강성'을 보이고 있지만 속내는 '연성'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돈과 출세보다는 가정과 종교를 먼저 생각한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80%의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고 응답했다. 종교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도 65%가 넘었다. 이 비율은 테러 이전에 50%를 약간 웃도는데 그쳤었다. 경제호황만 알던 신세대들도 변하고 있다.테러 이전에는 '30세 이전의 억만장자'가 꿈이었지만 이제는 전쟁에 나갈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의 한 인테리어 업체에서 일하는 25세의 앤드루 깁슨은 "군대에 가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며 "얼마전까지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의 얘기들"이라고 말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