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팀블릭 < 마스타카드 코리아 대표이사 > 지난 1997년과 98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역할에 대한 비판은 이제 거의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재벌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의 빠른 성공과 성장을 주도해온 것을 돌이켜 본다면,이는 '먹이를 주던 손을 물어 뜯는 행위(biting the hand that feeds you)'였다.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국내 산업 발전을 이끌어 왔던 재벌들은 그동안 정부와의 협력아래 한국기업을 다국적기업의 위치에 까지 오르게 한 것을 비롯 한국을 전세계 소비시장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물론 재벌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 많은 허점과 실패도 있었다. 독자들은 아마도 재벌들에 대해 반대하는 단체들-즉 노동자들,해외 채권자들,IMF,그리고 정치가들-이 열거하는 한국경제를 위기까지 몰고 온 재벌들의 책임론에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급성장해 왔던 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재벌 시스템은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윈스턴 처칠의 민주주의에 대한 묘사를 빌려 표현하자면,이것은 '최악의 시스템이지만,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the worst of all systems,except for all the others)' 오늘날 재벌은 변화의 물결속에 있다. 대부분 재벌그룹들이 창업자 뒤를 이어 다음 세대가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면서 그룹내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그룹의 경우를 보더라도 창업자 2세들이 한 가족이지만 서로 경영진의 역할이 나뉘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그들을 '한 그룹'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 재벌들 사이에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재벌그룹내의 조직 개편은 물론 그룹 전체의 관리체계와 전략의 방향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논평가들이 자주 쓰는 구조조정,즉 인원 감축과는 다른 의미의 구조조정이 그룹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때때로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향후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나는 한국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충고를 했었다.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시장이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하며,모든 거래 당사자들에게 공정한 법 적용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또 정부 주도의 여신으로부터 은행의 독립성을 강화시키며,외국자본의 직접 투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외국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선진 기술 및 운영 기법을 도입해야 하며,노사관계도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향력 있는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시장을 볼 때 대체로 재벌을 가장 이상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재벌 파트너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전략적인 비전,기업가로서의 강한 지도력,전문적인 경영능력,차세대 기업 관리자들의 양성 등이다. 나는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외국투자자들로부터 앞에서 언급한 필요 요건들이 재벌 내의 각 분야에서 상당 부분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재벌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속도가 실제로 한국내의 다른 사회부문이나 경제부문에서 일어나는 변화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동통신과 소매유통 부문의 변화를 살펴보면 재벌들이 지난 몇년 동안 진행된 물류와 유통 부문의 혁명을 어떻게 주도해 왔는지 잘 알 수 있다. 내게 가장 친숙한 분야인 신용카드업계를 보더라도 이러한 변화는 잘 드러난다. 재벌 기업들은 소비자 신용관리나 마케팅은 물론 창의적인 브랜드 전략과 광고 등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재벌을 무조건 과거 한국의 '필요악'으로 규정짓기보다 재조명해 보아야 할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재벌의 개혁은 기업 내부로부터 자율적으로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