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 < KTF 사장 ykl1943@magicn.com > 가끔 패션감각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넥타이는 누가 골라 주며 소위 코디를 누가 해 주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들을 때마다 흐뭇한 기분이 든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교복을 빼놓고 옷을 사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손수 지어준 옷을 입고 다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한참 자랄 나이의 옷은 큼지막해야 몇 년은 입을 수 있다는 어른들 지론에 한번도 몸에 맞는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멋쟁이들은 구두 끝이 보일락말락하는 나팔바지에 풀을 빳빳하게 먹여서 다린 저고리를 입고 다닐 때였다. 그러나 항상 축 처지고 흐느적대는 교복 때문에 멋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모양내는 사람들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에는 검정물감 들인 군복에 워커가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옷차림새였으며 또 이러한 차림이 진솔하고 당당하게 느껴지는 나이였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들 중에도 화려한 옷차림에 짙은 화장을 한 여학생보다는 수수한 치장에 화장기 없는 얼굴에 더 호감이 가던 때였다. 이러한 생각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바뀌었다. 자기 전문분야에서 세계 일인자였던 직장동료가 옷차림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친구의 지론은 이랬다. 모양을 내고 치장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정말 납득이 가는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남편이 아내를 의식해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그것이 무절제한 성형수술처럼 물리적이고 순간적인 변화를 지향해서는 안된다. 개성을 없애고 보편적인 외모를 만들어 내는 '얼굴 뜯어고치기'가 아닌,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계발하는 '모양 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