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6일(미 현지시간) 미국뉴욕 맨해튼 챔버스트리트에서 바라본 세계무역센터(WTC) 빌딩 테러 참사현장은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가시지 못한 듯 연기가 피어올랐다. 현지 미국인들의 얼굴에서도 슬픔과 애도의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락의 끝은 희망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겨 다소 황량해진(?) 거리 곳곳엔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장미 꽃다발이 물결치고 있었다.또 남을 배려하지 않는 개인주의라는 '가시' 대신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변화의 앞에 한국인들이 있었다. 12만명에 달하는 뉴욕 한인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층 성숙해지고 있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자평이다. 돈밖에 모르는 악착같은 동양인의 이미지를 벗고 이웃의 아픔을 가슴으로 보듬어 안는 따뜻한 한국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 현지 교민방송인 라디오서울은 테러사건 직후 모금을 시작,26일(현지시간)현재 1백만달러가 넘는 거금을 모았다.참여한 사람만 1만5천여명에 달했다.다른 현지 한국계 언론과 교회단체에서 모금한 액수를 합하면 1백50만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라는 게 라디오서울측 추산이다. 이는 중국계를 빼면 소수 민족중에 가장 많은 실적이라고 송의용 라디오서울 보도본부장은 강조했다. 그는 "가슴이 따뜻한 한인들의 천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교민들의 적극적인 봉사활동도 현지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방관과 경찰관들의 옷을 무료 세탁해주겠다고 나선 세탁소 주인이 있는가 하면 자원 봉사자들에게 물과 샌드위치를 무료 제공하는 식료품 가게도 나왔다. 한 인쇄소 주인은 성조기 값이 폭등하자 10여만장을 무료로 배포,현지 언론에서 '코리안 베스트 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박주학 사장은 "적지않은 한국인의 희생은 가슴아픈 일이지만 이번사태를 계기로 한국인들은 이웃을 생각하는 뉴욕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절망과 분노의 잿더미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꽃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뉴욕=박수진 금융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