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 < KTF 사장 ykl1943@magicn.com > 흔히들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자식의 나이가 스물아홉이라고 결혼을 1년 미루는 사례도 종종 본다. 스물아홉 서른아홉 등 아홉 숫자의 나이를 넘길 때 어려움이 따를 경우가 많고 따라서 아홉의 나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원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사주팔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요즘 아홉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서른아홉에서 마흔이 되면 당연히 30대에서 40대로 불리게 되고 우선 와닿는 어감이 다르다. 쉰아홉에서 예순으로 넘어갈 때는 특히 '50대'라는 말에 대해 애착이 간다. 50대라면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활동적인 나이로 들리지만 60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에서 은퇴해야 할 노쇠한 나이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예순을 눈 앞에 둔 웬만한 사람이라면 대개 초조해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일까.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꿈을 이룰 기회가 아직도 남아있을까. 갑자기 다가오는 환경이나 내면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면 돌출반응을 보이게 된다. 변화에서 오는 위기는 사춘기나 아홉을 넘기는 나이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금실 좋던 부부가 50∼60대에 헤어지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또한 일생을 반추하며 회의를 느끼다가 빗나간 사랑이나 잘못된 가치관에 빠지기도 하고 평생 간직해 왔던 기준을 포기하기도 한다. 인생 선배로부터,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며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꿈이 커야 많은 것을 이룬다고 하지만 청소년 때의 꿈과 40∼50대의 꿈은 차이가 있어야 한다. 우선 그 꿈을 이룰 시간이 충분치 않고 삶의 이정표 또한 보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필요한 일에는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싶다. 치열한 삶을 겪은 뒤 적절히 포기하며 인생의 꿈을 조절하는 지혜가 간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