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가 전반적인 불확실성과 불안감속에 던져진 가운데 국내 외환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수면아래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번주 달러/원 환율은 상승모멘텀을 달고 1,300원대 안착을 위한 시도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세는 아래쪽이 공고하게 굳어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월말과 추석을 앞둔 시점상의 하락을 조장할 수 있는 요인이 있음에도 시장은 비정상적인 논리와 메카니즘에 의해 불균형 상태를 보이고 있다. 쉽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미국의 테러에 대한 대응공습도 시장에 언제든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변수로 잠재돼 있다. 지난주 말 예기치 못한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의 급등세는 강보합으로 방향을 굳히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에 따라 이번주 환율은 '1,290∼1,310원'의 넓은 이동거리를 띨 변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최근 1,300원대 진입에 딴죽을 걸었던 것으로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의심받고 있는 외환당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도 중요한 변수다. 지난주 내내 주식순매도세를 보이며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킨 외국인이 이같은 추세를 이을 지 여부도 시장 참가자들의 판단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직 자금이탈 낌새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으나 그 추이를 잘 살펴야 한다는 입장. ◆ 50여일만에 1,300원 등정 = 지난주 환율은 1,300원에 한 주를 마감, 지난 7월 31일 1,300원을 기록한 이래 처음으로 이 선을 등정했다. 지난주 월요일만 해도 장중 1,300.50원까지 오른 뒤 이틀 내리 소폭 하향됨에 따라 '1,300원'에 대한 벽은 확인된 상태였다. 당국의 견제구로 추정되는 물량이 시장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으나 의외로 강한 결제수요가 이어지면서 환율을 끌어올렸다. 미국의 공습 전개를 앞두고 불안감을 보이는 유가 때문에 정유사를 중심으로 한 결제수요가 몰렸으며 지난주 내내 주식 팔자에 무게중심을 둔 외국인의 매매동향이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달러/엔 환율과의 연결고리도 거의 끊어져 버리면서 엔/원 환율은 9개월반중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선 상황. 지난 '엔화 강세-원 약세'의 상반된 움직임은 지난 금요일 장중 100엔당 1,114.81원까지 올라섰으며 1,111.21원을 기록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시장은 달러/엔과의 동조를 이탈하면서 하방경직성이 단단해졌다"며 "역외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간파, 달러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혼란스런 시장분위기 =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어떤 방향성을 잡고 거래하기보다 순간적인 흐름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거래가 이어지고 공연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정부나 언론의 행태가 외환시장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측면이 강하다. 한 시장관계자는 "일부에서 대규모의 회사물량이 나왔으나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흡수한 뒤 결제수요만 거의 나오다시피하고 있다"며 "심리적 요인이 강하며 쉽게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어 유동성이 말라가는 듯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비이성적인 공습을 염두에 둔 달러 매수심리가 강하게 저변에 깔린데다 수급상 네고물량보다 결제수요가 앞서 있다. 수출 부진으로 공급될만한 물량도 많지 않고 이나마 거주자외화예금 등으로 보유되고 있다. 그만큼 장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이번주 월말을 앞두고 있음에도 네고물량의 공급이 활발하리란 예상은 어렵다. 오히려 분기말이란 점을 들어 결제수요가 더 많은데다 향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정유사의 수요가 더욱 커지리란 전망이다. 또 추석을 앞둔 자금수요도 예년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삼성전자의 네고물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반도체가 수출이 극히 부진하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업들의 자금수요도 현재 상황에선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1,300원 이상에서는 보유물량을 내놓겠다는 업체들이 있어 이들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관건이다. ◆ 외국인 순매도와 당국의 '고민' = 지난주 외국인은 주식순매도에 힘을 쏟으면서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매도우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시장 참가자들은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증시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환율이 불안정한 흐름속에 있자 매도 규모를 키우고 있다는 것. 특히 환율의 흔들림이 뚜렷해지면 국내 증시에 바로 전이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자금이탈의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환율 상승 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역외에서는 주식순매도분 역송금수요를 NDF시장에서 선헤지하기도 했다. 과연 이번주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시장불균형은 좀 더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영향력이 줄어든 NDF시장에서의 흐름이 다시 국내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환율이 안정된 측면이 있었?때문에 금리를 내리고 다른 정책적 대응을 할 수 있었다"며 "환율이 불안하면 증시의 낙폭이 더 커지고 외국인 이탈이 가시화될 수 있는 불안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불안감은 전세계적인 것이고 우리나라만 국한된 거 아니므로 좀 더 외국인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근 환율이 아래에서 위로 갈 때는 '시장의 힘'에 의해 이뤄진 반면, 위에서 아래로 갈 때는 '당국의 힘'에 의해 좌우된 혐의가 있다. 따라서 지난주 당국의 힘을 뚫고 1,300원에 올라선 환율로 인해 당국의 자세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도 관건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한국은행(BOK)과 재경부의 입장이 명확히 갈린 것 같다"며 "BOK가 물가 때문에 1,300원 이상은 어렵다는데 반해 재경부는 내수진작만 가지고는 안되므로 수출 확대를 위해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환율이 올라가도 최근과 같이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상태에서 수출 확대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다른 딜러는 "당국이 1,000억원이 넘는 외환보유고를 든든한 바탕으로 레벨을 다소 높일 것"이라며 "직접적인 달러매도 개입은 어렵고 공기업을 통한 수급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 달러 방향 따라잡기 = 원화는 최근 엔화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동남아 통화와도 어떤 연관성없이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오히려 가치 변동률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방향성면에서는 달러화를 따라가고 있는 형국. 우리나라 경제구조 자체가 미국 경제와 상관계수가 높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 달러/원이 상승세가 대세라는 것을 안정하되 다른 통화와 역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급락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음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달러 가치는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테러사태이후 미국 경제가 받아들이는 충격이 예상보다 커 뉴욕 증시가 닷새 내리 미끄럼을 타고 있다. 다우존스지수는 이 기간 1,370포인트, 14.3% 폭락, 대공황기인 1933년 7월 이후 가장 큰 폭을 상실했으며 특히 8거래일 연속 내리며 89년 이후 최장 하락 기록을 세웠다. 달러 역시 이같은 미국 경제의 상황을 대변하듯 지난주 유로와 엔에 대해 6개월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불확실성에 직면해 힘을 잃었다. 선진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지지하기 위한 시장의 공조개입이 예상되나 한번 힘을 잃기 시작한 달러가 이전의 자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 일본은행(BOJ)이 최근 연이은 시장 개입을 통해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한 백방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달러/엔이 한달내 110엔 언저리까지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와 일본의 9월말 반기 결산을 앞두고 기업들이 '달러매도-엔매수'에 나서 해외자금을 본국으로 들여오고 있기 때문. 또 아직 아프간 공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시장 불확실성을 조장하는 요인중 하나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