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 < KTF 사장 ykI@ktf.com > 얼마전 큰 녀석이 장가를 갔다. 남들은 내 나이에 벌써 손자를 몇이나 봤는데,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 30년을 곰곰이 되새겨 봤다. 첫아이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동안 태어났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아이가 생겼으니 부모로서 무엇을 별로 해준 기억이 없다. 그저 피아노 치고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다. 안정과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직장을 옮기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고,남들처럼 리틀리그 야구코치나 스카우트 마스터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아이가 대학으로 진학,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간 후부터는 방학 때 집에 오더라도 잠깐 다녀가는 손님이 돼 버렸다. 어느새 이 녀석이 훌쩍 커 버린 것인가. 지난해 '아버지 학교'에 다닐 기회가 있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아이들이 다 성장해 집을 떠난 마당에 뒤늦게 '아버지 노릇'하는 것을 배운다니 '너무 늦지 않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아버지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로 썼다. 또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정성으로 키워 주신 부모님,특히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 예전에 미처 전하지 못했던 생각과 고마운 마음을 글에 담았다. 그때처럼 좋아하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부모의 사랑은 순고하고 헌신적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고 경제적으로 양육한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기술이다'라고 표현한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부모 특히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배움으로써 그 역할을 보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이든,강의든,주위의 경험담이든,아니면 혼자만의 사색이든 방법은 상관없다. 아버지로서 고민하면서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주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병들어 가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