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25년만에 처음 겪는 최악의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8월25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미국의 생산성 둔화가 세계적인 경기불황을 초래할 것이며 결국 달러화 가치급락을 수반하는 엄청난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9월3일 국제통화기금 세계경제전망보고서 초안) 세계경제 동시불황론이 부쩍 힘을 얻고 있다. 악몽 같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들먹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진념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최근 한 강연에서 "당시와 같은 대공황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세계 동시 불황론을 듣노라면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오싹한 기분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동안 세계경제 성장의 동력 역할을 해온 미국 경제가 IT(정보기술)경기 침체 영향으로 지난 2·4분기 0.2% 성장에 그치는등 급속히 힘을 잃고 있어서다. 일본은 10년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남미와 아시아 금융시장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의 불똥으로 언제 다시 흔들릴지 모를 정도로 불안한 양상이다. 이런 판국이니 대공황 재발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나올 법도 하다.지난 1929년 뉴욕증시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미국 전 노동인구의 3분의 1인 1천6백만명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공업생산은 절반이상 줄었고 농민들의 수입 또한 60%나 감소시킬 정도로 위력이 엄청났다. 이쯤해서 시계바늘을 2년여전으로 돌려보자.당시 권위있다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IT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신경제론을 앞세워 "이제 경기순환(불황)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됐음은 분명하다"(99년 12월31일자)고 써댔다. MIT의 레스터 서로 교수나 스탠퍼드대의 폴 로머 교수도 여기에 동조,"저물가속의 고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미국의 10년 호황이 가져다준 신경제에 취해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판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이제 '한물간' 용어로 판명난 신경제를 새삼스레 꺼낸 것은 지금 거론되는 '대공황론' 또한 '신경제론'이 걸어온 과장된 전철을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물론 미래가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지만 적어도 21세기 초엽의 현재는 30년대와는 많이 다르다. 대공황까진 가지 않을 것이란 주장의 근거는 우선 그당시처럼 각국이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 극단적인 보호무역정책이나 화폐 평가절하 정책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미국이나 일본 EU(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이런 정책의 폐해를 잘 알고 있다.또 하나는 각국이 불황을 헤쳐나갈 만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국제적 기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경제에서 대공황론으로,사람들의 생각이 짧은 기간 극에서 극으로 왔다갔다 하는건 세계화 정보화가 가져온 부작용중 하나다. 세계화 정보화는 인류 생활의 질을 높인 한편으로 제품이나 사람의 라이프 사이클을 크게 단축시켰다. 모두가 '대박'을 꿈꾸고 단기간에 승부하려 한다. '성실성'이나 '여유'같은 단어는 아날로그 시대 유물일 뿐이다. 대공황 시절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을 가슴에 새겨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다" 지금은 IT혁명이 초래한 버블이 꺼지고 있는 단계다.이 과정이 어느 시점에서 끝날지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분명한건 너무 비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앞날에 대한 과도한 장밋빛 전망이 거품을 크게 한 것처럼 지나친 두려움도 오히려 경제를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이런 때일수록 평상심을 갖는게 중요하다. ph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