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성실'이다. 지난 1년여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본 출입기자들도 이에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작년 8월 금감위로 온 후 현대그룹 문제,금융감독기구 재편,국민 주택은행 합병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나올 때마다 꼼꼼하고 성실한 일 처리로 원만하게 해결했다. 그래서 주위에선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에게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결단력이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대우자동차 현대투신 하이닉스반도체 등 이른바 3대 현안에 질질 끌려다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경질설이 나돌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위원장은 지난번 개각시 유임이 결정된 7일 출입기자와의 세미나에서 '오버'를 거듭했다. 그는 "여기 못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참석하게 돼서 기쁘다"고 운을 뗀 뒤 이렇게 말했다. "3개 기업중 2개는 자리를 걸고 이달 내 반드시 결론을 짓겠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은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처리하겠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발언으로 인해 적어도 두 가지를 잃었다. 우선 기업구조조정에 당국자가 스스로 자리까지 내걸고 나옴으로써 그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채권단 자율처리' 원칙이 유명무실화됐다. 또 '3개기업 중 2개''국민의 정서'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시장에 혼란만 부추겼다. 이에 대한 반응은 시장과 언론에서 즉각 나타났다. 언론들은 특정기업을 거론했고 감독당국은 그 때마다 "위원장이 구체적인 기업명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해명 자료를 내야만 했다. 10일 오전 시장에선 대우차 매각에 대한 희망어린 전망에 힘입어 대우 관련주가 상승했다. 반면 현대증권 소액주주들은 현대투신 매각협상에 정부가 개입하는 바람에 손해를 보게 됐다며 강력반발하고 나섰다.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은 시장에 즉각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투자자들은 '국민의 정서'라는 흥미있는 '스무고개'보다는 책임있고 신중한 언행을 원한다는 점을 당국자들은 제발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수진 금융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