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 8·15 평양축전 혼선으로 촉발된 소용돌이 정치가 '9·7개각'으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의 느낌을 주고 있어 유감이다.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 건의안 가결로 DJP연합이 붕괴되면서 김대중정부는 소수정권이 됐다. 이때 소수정권이 된 정부·여당은 자못 비장했던 것 같다. '수(數)의 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는 등,새로운 정치에 대한 의욕과 결의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또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공언도 했다. 하지만 9·7개각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기보다 '헌 부대에 헌 술'을 담는 형국이 됐다. DJP연합이 붕괴된 마당에 이한동 총리의 유임은 식상한 느낌을 주거니와,자민련에 대한 보복의 성격도 풍긴다. 또 장관인사,특히 건교부장관의 인사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인사와 너무 거리가 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 성격이 짙어 소수정권으로서 국민을 상대로 정정당당한 정치를 하겠다는 장담이 무색하다. 또 국회에서 불신임을 받은 통일부장관을 대통령 특보로 임명한 것도 햇볕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결의로 보기에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책임정치의 결손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탈냉전시대에 적합한 포용정책으로서 의미있는 정책임에 틀림없지만,약점이 있다.북한의 막무가내식 떼쓰기 요구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햇볕은 무한대로 비출 수 있지만우리의 한정된 자원은 그렇지 못하다. 햇볕과 현실정책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특히 북한으로부터의 요구가 물질적 요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가치 문제라면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결함을 고치려 하지 않고 햇볕정책을 지고의 선으로,더구나 특정인과 동일시하려는 태도는 문제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임 장관의 퇴진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가 없이 햇볕정책이 추진된다면,햇볕정책의 문제점도 상당부분 보완될 것이고,또 햇볕정책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아테네의 솔론도 민주적인 법을 만들고 스스로 아테네를 떠났다. 그것은 솔론 없이 법이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이번 개각에서 사람들은 국정쇄신을 기대했다. 그것은 신(新)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김대중정부에 쏟아지는 당연한 주문이기도 하다. 여소야대라는 '분할 정부'의 운영은 성공만 한다면,그 자체로 한국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공고화에 중요한 기여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인사방식은 DJ 특유의 '밀어붙이기식'으로 구태의연하다. 이제까지는 장관인사에서 무리가 있어도 DJP연합의 기회비용이려니 하고 치부할 수 있었는데,단독정권인 지금 비전문인 인사의 발탁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지…. 왜 DJ는 국정쇄신을 머뭇거리는가. JP에 대한 야속함 때문인가,햇볕정책을 고수하기 위해서인가,혹은 레임덕 현상을 두려워해서인가. '큰바위얼굴'이 생각난다. 항상 큰바위얼굴의 도래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동안 큰바위얼굴의 기대를 모으고 나타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웠지만,주인공은 묵묵히 자신의 잘못을 하나씩 고쳐가면서 큰바위얼굴을 기다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큰바위얼굴이 됐다. 본인은 큰바위얼굴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동네사람들은 그가 큰바위얼굴임을 알아 보았던 것이다. 한편 '벌거벗은 임금님'도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착각이었다. 임금님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임금님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몰랐던 사람은 임금님 자신뿐이었다. DJ는 '벌거벗은 임금님'일까,아니면 '큰바위얼굴'일까. 나의 개혁이 옳고 나의 햇볕정책이 타당하며 나의 인사가 공정하다고 강변만 할 것이 아니라,나도 잘못할 수 있고 나의 정책도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 큰바위얼굴이 된다. 물론 쓴 소리는 듣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고 하면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우리는 DJ가 '벌거벗은 임금님'보다 '큰바위얼굴'이 되기를 기대한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