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휘장 <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 국제경영학 > 지난 다산칼럼(2001.8.10)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필자는 우리가 살아 남는 길은 세계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며,전략산업 및 지역 등에 있어 선택의 폭을 세계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독자로부터 세계화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세계화와 미국화의 차이점을 얘기하고자 한다. 패권주의의 대표적인 예는 Pax Romana로 일컫는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국제경영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가장 선진화된 로마의 법과 체제하에서 안심하면서 효율적으로 상거래를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로마제국 안과 밖의 경제발전 수준이 큰 차이를 보였다. 인접 도시국가들이 이러한 이점을 공유하고자 세금을 바치면서 로마제국에 편입됨에 따라 로마는 더욱 번창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던 도시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됐다. 오늘날의 Pax Americana는 Pax Romana보다 철저하지 못하다. 당시에는 로마의 완전 독점이었지만,오늘날은 미국의 독점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 많은 미국제품이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소니 벤츠 노키아 등 다른 나라 제품도 만만치 않다. 중요한 것은 제품의 국적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미국제품이 아니라도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 세계화와 미국화를 동일시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특히 미국이 영어와 문화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어는 미국어가 아니다. 영어의 상당 부분은 로마시대의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현재도 영어는 상당수의 외래어를 영어화하고 있다.김치(kimchi) 스시(sushi) 같은 단어들은 이미 미국에서 새로 편찬된 사전에 다 들어가 있다. 이들 단어가 또는 이 제품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는 격언이 있다.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편이 여러 면에서 좋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국 주도 사회에서는 미국문화를 따르면 편할 때가 많다. 그런데 과연 미국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는가? 사실 미국처럼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 문화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등을 가보라.미국문화의 본산지인 할리우드에서조차 홍콩영화 등 외국산 영화가 크게 인기를 누린다. 미국 경쟁력의 핵심은 개방정책에 입각한 세계화에 있다. 미국인들은 필요하면 연구하고 배운다. 1980년대 일본식 경영이 두각을 나타낼 때 미국의 경영대학원에서는 모두 일본식 경영의 원칙과 사례들을 교과목에 포함시켜 연구했다. 이를 다시 미국식 경영에 접목시켜 1990년에는 일본을 압도한다.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역으로 이룬 셈이다. 현재 미국기업의 구조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새로운 환경 적응 등에 훨씬 잘 부응하고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미국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세계화를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세계화 없이는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의 문호를 개방한 후 일본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45년 맥아더 장군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강요하면서 일본은 다시 발전했다. 덩샤오핑이 1970년대 중국을 개방했을 때 다른 나라와의 경제수준 차이를 절감했다. 현재 중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그 이후 세계화를 착실히 진행했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발전 차이의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싱가포르와 방글라데시,말레이시아와 미얀마,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얼마만큼 세계화를 이루었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