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가정이나 풍요로울 때는 별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풍요로움이 가져다 주는 여유랄까,그런 분위기가 내부를 지배한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국가 사회 가정의 구성원 모두가 예민해지고 분열과 갈등이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의 밑바닥에도 바로 경기불황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면 이같은 '죽기 살기'식의 분열과 대립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를 통합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역시 '건강한 경제'다. 지금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불황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10년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미국 역시 10년 호황이 끝나고 장기불황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계 동시 불황론이 힘을 얻는가 하면 미국의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은 공황의 도래를 점치기도 한다. 미국에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얘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불황은 당신의 이웃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고,공황은 당신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불황과 공황을 정의했다. 이미 세계는 이웃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됐고, 본인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점점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이번 불황은 제조업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일어났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소위 '뉴 이코노미'로 불리는 IT(정보통신)산업의 호황이 끝나면서 21세기 들어 처음 맞는 불황이다. 산업사회 아날로그경제에서 정보화사회 디지털경제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처음 겪는 현상이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올들어 7차례나 금리를 인하했어도 경기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번 불황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따라서 불황을 벗어나기 위한 치유책 마련 또한 만만치 않고,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뉴 이코노미는 IT분야의 기술혁신과 이를 일궈내는 벤처기업,벤처캐피털이라는 금융기관,나스닥이라는 주식시장 등이 엮어낸 합작품이었다. 전통산업에서 중요시되던 영업이익보다는 캐피털 게인(자본이득)이 기업을 유혹했고,높은 임금보다는 스톡옵션이 종업원을 끌어들이는 원천이었다. 나스닥과 코스닥이라는 금융시스템이 경제를 지탱시켜주는,종래와는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였다. 미국에선 경기가 10년 호황을 누리는 동안 경기사이클(순환)과 상관없이 계속 뻗어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나스닥과 코스닥이 폭락하면서 뉴 이코노미는 종말을 고하고,침체의 길로 빠져들었다. 경기사이클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최근들어 좌파 경제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들은 뉴 이코노미 역시 자본주의의 한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에 경기침체나 불황,공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이론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와서 어떤 이론이,누구의 이론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불황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서 얼마나 빨리,커다란 고통없이 현 상태를 벗어나느냐는 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정치권 산업계 노동계 등 모든 사회 세력들이 '경제회생'이라는 컨센서스를 향해 통합된 응집력을 보여주는게 필요하다. 경기침체가 사회분열을 낳고 사회분열이 경기침체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르는 세계적인 경기불황을 눈앞에 두고 우린 지금 너무 찢어져 있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