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반도체업계에서는 '사생결단'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상대방을 먼저 쓰러뜨려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누군가가 도산,공장 문을 닫아야 반도체 공급이 줄고,그래야 반도체 가격이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누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오래 버틸 수 있는가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충분한 유동성을 비축해야 한다. 이 '유동성 게임'에서 불행히도 하이닉스반도체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1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는 금년 상반기에만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취약한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사도 금년 상반기중 5천억원(4억달러)이 넘는 적자를 냈다. 하이닉스반도체에 막대한 돈이 물려있는 우리 은행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 내려고 애쓴다. 3조원의 부채를 출자전환하고,신규로 자금을 공급해 하이닉스반도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려 하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올해 초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하에서 정부는 시장위험도가 높은 일부 기업의 회사채를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일정한 금리하에 인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에 의한 가장 큰 수혜자는 하이닉스반도체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관련업계 의회 행정부가 일제히 들고 일어나 "한국 은행들의 금융지원은 불공정 행위"라며 항의하고 있다. "금융지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WTO(세계무역기구)규정 위반으로 제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금융지원은 채권금융단의 시장논리에 의한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서 정부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편 마이크론사도 최근 금융시장에서 4억5천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왜 하이닉스반도체를 걸고 넘어지는가. 그 대답은 비정상적인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부실기업 처리와 금융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1백37조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로인해 11개 시중은행과 6개 지방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은 70%를 넘어섰다. 즉 실제로 대다수 은행이 국유화됐고,경우에 따라 시장실패를 이유로 특정 기업의 사실상의 신용평가와 회사채 금리를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우리 금융의 현주소이다. 정부소유의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경우 또 다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 진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어떤 은행에 의한,어떤 형태로의 금융지원도 외국의 시각에서는 '정부에 의한 불공정 금융거래'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금융상황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또 다른 산업이 침체에 빠졌을 때,우리 금융기관에 의한 우리 기업의 지원이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처럼 '불공정 지원' 혐의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조속한 시일내에 금융기관을 민영화하고 시장기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서울은행과 현대투신의 매각도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현재 내국인의 경우 4%로 제한돼 있는 동일인의 시중은행 주식보유한도를 철폐해야 한다. 그동안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의 사금고화를 우려해 금융전업기업에만 은행을 소유하도록 제한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조건을 달 경우,실제로 은행을 인수할 기업을 찾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은행을 소유하는 그룹의 경우 산업부문에 대한 불공정 금융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엄격한 감독체제를 마련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의 회복을 위해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의 주가가 회복될 때까지 민영화를 미룬다면 금융시장의 정상화는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이에따라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경제비효율의 기회비용은 훨씬 크다. hongecon@cau.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