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축전에 참가한 8·15방북단이 돌아오던 날,김포공항에서 좌·우익단체들이 대치하고 증오하던 현장이 TV에 방영됐다.

대북문제가 얼마나 우리민족 내부에 갈등을 생산하는 원인이 되는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필자는 민주화와 구조조정의 문제가 점차 퇴색하는 21세기에 있어서 남북문제 이상의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의 주제와 달리 이것은 국가안보와 이념이 개재하는 사안으로,정론(正論)이 없는 주제가 되고 있다.

사상문제가 간여하는 만큼 누구도 유보(留保)함 없이 토론 및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반면,어떤 논리나 행동도 자기 당위성을 강력하게 주장할 근거를 마련한다.

우리나라가 이런 복잡한 문제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민족적 유산이고 운명이다.

현명한 정부가 거침없고 투명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 진실로 이 문제에 진력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 대북정책은 국민 상호간의 불협관계를 조성시키는 존재로서의 누명을 벗을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이런 대북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자세는 용기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근간이 되는 햇볕정책은 오늘날 국민적 정서를 옳게 반영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햇볕이 북한을 개방 개혁으로 이끌어 그 효과가 북한의 발전과 남북평화로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절차나 비용은 합리적인 것이며,과연 소기의 효과를 얻을 것인가.

햇볕이 그 지도자들에게만 머물고 북한의 개방 경제발전 인민행복은 오히려 지연시키는 역작용의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인가.

지난번 화제가 된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여행길을 보자.장막이 쳐진 10여량의 기차에 경호원과 수행원을 가득 싣고,전도소개(前途疏開)하며 내일 어디 머무를지 모를 일정을 따라 장장 20여일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국가원수-. 21세기인 오늘날 실로 구경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기독교인이 천당가는 길을 그린 풍유(諷諭)소설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에 빗대어 '고대적(古代的) 제왕역정(Archaic Imperial Progress)'이라고 비꼬았다.

세계가 개방으로 회유하기 수년만에 보게 된 북한 지도자의 외유는 '김정일은 역시 북한의 제왕'이라는 인상을 지구촌에 심어주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북한은 세계평화를 볼모로 잡아 갈취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국제적 평판을 받고 있다.

국가경영에 있어서도 생산과 무역에 힘쓰기보다 무기판매와 정치적 거래에 더욱 의존한다.

연간 수출은 5억달러에 불과한데,핵무기생산과 미사일수출 중단을 조건으로 서방국가에 연간 10억달러의 지원을 요구했고,남한으로부터는 8억달러 상당의 금강산관광 대가를 얻어냈다.

공과 사,개인과 단체를 불문하고 남한에서 교류를 원할 때마다 공공연하게 입국료를 받아갔으며,이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뒷거래의 소문이 무성했다.

북한이야 국가체면을 포기한지 오래지만,덩달아 추락하는 민족적(Korean) 평판은 어찌할 것인가.

깡패는 언제 임자를 만날지 모른다.

북한정부의 도박은 언제 한반도 전체를 전쟁위험에 빠뜨릴지 알 수 없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남한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일들이다.

그러나 '저들'의 일이라고 '우리'는 신경을 끄고 관계개선에만 골몰해 왔다.

동포와 인권에 관심이 많은 우리의 종교 및 시민단체들도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이제 북한지도자의 입맛에나 영합하는 정책이 진실로 북한을 돕고 개방으로 이끄는 길인가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그들은 다른 방도로 인민을 먹일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도박이 되는 개방과 개혁의 벼랑으로 밀린 것이다.

그런데 대북지원이,오히려 북한지도자들이 인민에게 베푸는 은전만 강화한다면 그들의 용신폭은 넓어지고 북한인민에게 개방 개혁의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진정한 햇볕정책이라면 그 햇살이 북한인민들에게 직접 미치도록 관리하고,이들이 쇄국인민의 불행을 피부로 느낌으로써 스스로 개방 자립할 의식을 일깨우도록 하는 것이 돼야 한다.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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