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8월12일 오후.증권사및 투신사 사장들은 오후 6시까지 투신협회에 집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사장들은 증권협회및 투신협회가 미리 준비한 '투신사및 증권사의 수익증권 환매대책'을 '억지 춘향식'으로 결의했다. 사장단 회의가 끝나자마자 금융감독위원회는 기다렸다는듯이 환매대책이후의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이보다 한달여 앞선 1999년 7월19일.투신사 사장들은 영문도 모른채 '대우그룹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 참석해야 했다. 이날 채권단은 대우그룹에 4조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키로 결의했다. 일부 투신사 대표가 "수익증권은 고객재산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3년후인 지난 20일.서울지법 민사합의 21부는 전기공사공제조합이 한국투자신탁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채권금융기관의 자율협의에 따른 것이라도 고객재산 관리를 소홀히 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일이 이렇게되자 투신사들은 속앓이에 들어갔다. 대우그룹에 대한 4조원의 신규지원도,대우채 환매제한도 정부의 '작품'이라는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물증'이 없다. 당시 금감위에선 대우를 비롯한 부실기업 지원에 대해 철저하게 채권단 자율결의형식을 취했다. 그런만큼 형식논리상 부실기업 지원과 그로 인한 고객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투신사의 몫이다. 여기서 대우그룹 등 부실기업처리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자는건 아니다. 문제는 금감위의 문제해결 방식이다. 어찌된 일인지 금감위는 '공문 만들기'를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자신들은 철저히 뒤로 숨은채 자율결의를 내세워 칼을 휘둘러 댔다. 이제 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고객손실에 대한 책임을 투신사가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이상 투신사는 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하이닉스 현대유화등의 지원에 대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자율결의'로 위장한 금감위의 졸렬한 문제처리방식이 가져온 결과인 만큼 그 책임도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하영춘 증권부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