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1165?~1227)의 생애는 원정의 연속이었다. 그가 죽을 무렵 몽골족은 고비사막 북부 초원의 힘없는 유목민족이 아니라 동으로는 만주,서로는 러시아,남으로는 인도,북으로는 시베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의 주인으로 군림했다. 비정한 정복자 칭기즈칸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인류의 문화재들을 파괴했다. 하지만 그의 대제국은 1세기 넘게 지속되면서 민족이나 국가간의 장벽을 허물고 물질적 문화적 교류의 길을 터놓아 인류의 세계관을 넓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가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이처럼 컸다. 독일의 라츠네프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무사의 아들로 오논강가의 델리윈 볼닥에서 태어났다. 그가 탕구트로 마지막 원정을 떠난 것은 1226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8월에 죽었다. 그의 죽음은 극소수인에게만 알려졌고 몽골군의 무자비한 복수로 탕구트 수도의 주민은 몰살당했다. 시신은 수레에 실려 고향으로 호송됐다. 죽음을 비밀로 하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장례행렬 도중에 만나는 사람은 모두 죽였다. 전승에 따르면 행렬이 오르도스지방의 무나산(山)에 이르러 수레가 진흙에 빠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자 이것이 칭기즈칸의 뜻이라고 생각해 그곳에 시신을 묻었다고 한다. 하나 그곳에 묻힌 것은 칭기즈칸의 옷과 텐트 가죽신발 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폭염속에 시신을 그곳까지 운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다. 행렬이 고향에 이르렀을 때는 '황금의 시신'은 없고 관이 텅 비어 있었다는 옛 기록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떻든 칭기즈칸의 공식적인 매장지는 몽골고원의 '아마 부르한 할둔산(山)'으로 기록돼 있다. 매장할 때 금단의 구역으로 지정돼 정확한 지점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과 몽골의 고고학자들이 칭기즈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탄생지 근처인 바트쉬리트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발굴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그곳이 정말 칭기즈칸의 무덤이어서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릴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