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현상은 어제오늘 비롯된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도를 넘어 일부 주요업종의 경우 산업공동화를 우려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제조업체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경영인프라 조사'(본지 20일자 1면)에 따르면 60%가 국내 생산시설을 외국으로 옮기거나 해외 현지공장을 신·증설할 계획인 반면 국내생산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26.5% 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국내제조업의'탈(脫) 한국 러시'는 국내 생산기반의 약화와 그에 따른 고용불안 수출감소 등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대처해야 할 일이다. 물론 글로벌경제 시대인 만큼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조사대상의 25.2%가 외국 수입장벽의 회피를 위해서라고 응답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외생산은 통상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경영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외국으로 설비를 옮기거나 해외 현지공장을 신·증설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52.2%가 고임금,노사분규,각종 규제 등 세가지 국내요인 때문에 해외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응답한 것은 국내에서 기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국내요인 중에서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고임금은 단시일내에 개선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노사분규와 갖종 규제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조사 결과로 볼 때 노사분규와 규제문제만 해결된다면 제조업의 해외탈출 요인은 21.6%나 줄어들게 되는 셈이니,제조업의 공동화를 막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제조업 탈한국 러시는 섬유 등 노동집약도가 높은 산업에 그치지 않고 거의 전 업종으로 확대되는 양상인데 특히 전기전자 컴퓨터업체들의 생산거점 해외이전은 국내 첨단산업기반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냥 방관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제조업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의 기피풍조와 함께 산업구조의 탈공업화 바람에 쓸려 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보병 없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듯이 질좋은 제조업 없이는 경제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최근 구미 각국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제조업을 잃는다면 질좋은 서비스업마저 잃게 된다"는,제조업 전도사 마키노 노보루의 경고를 귀담아 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