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소비자에게 상품정보를 전달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광고는 한 시대의 유행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문화가 녹아있는 것이다. 특히 사랑을 소재한 광고에서 달라진 우리들의 모습을 또렷히 확인할 수 있다. 요즘 광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여성들의 자신만만하고 솔직해진 사랑법. 최근 선보인 SK텔레텍 "스카이" 광고에서는 자신을 신뢰하고 남자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20대 여성이 파티에서 만난 새 남자친구를 껴안고 있는 장면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어 남자친구에게 화상 메일로 보낸다. "잘 봐.네 자리에 누가 있는지". 경제적,사회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하는 삶은 찾아볼 수 없다. 변명이나 가식도 없다. 히딩크 감독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삼성카드 고소영은 여자의 욕망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그녀는 엉덩이 선이 맵시있게 살아있는 멋진 남성만 골라 대낮 길거리에서 과감히 엉덩이를 손으로 만지며 지나간다. 어른들이 보면 혀를 찰 일이지만 그녀에겐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광고는 동성애적인 코드도 담고 있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고소영이 마지막으로 만진 엉덩이의 주인공은 제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안전요원. 그런데 뒤돌아선 사람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도도화장품 빨간통 패니아 광고를 통해 양지로 나온 트랜스젠더 하리수도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를 흐트리며 우리시대 넓어진 사랑의 진폭을 보여준다. 사랑지상주의 경향도 읽을 수 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우기는" 그런 사랑이다. 롯데칠성 "2% 부족할때"캠페인에서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정우성의 모습.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을 하는 듯하다. 나약한 남성상을 선보인 동양생명 "수호천사"편에서도 죽고 못살 것 같은 사랑이 느껴진다. 군대가는 여자친구를 배웅하는 장면에서 "일생에 세번"이라는 남자의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린다. 순간 전해지는 그 사랑의 깊이. 이념이니 역사니 하는 거대담론이 사라진 자리를 "과잉사랑"이 꿰찬 것일까. 10대의 사랑법은 다소 난해하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들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기호와 언어,느낌으로 사랑한다. 가슴설레는 풋사랑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롯데제과 제크광고에서는 한 소녀가 "4 5683 968"이란 숫자만 되뇌인다. "I love you"에 해당되는 휴대폰 자판을 뜻한다. LG싸이언에서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사랑법이 엿보인다. 열두 줄 칼라폴더 휴대폰으로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은 유머섞인 과장임을 감안하더라도 10대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세대의 사랑법이다. 노년층의 사랑은 밝아졌다. 쓸쓸히 말년을 보내기보다 새로운 삶을 그려간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또래들과 어울리며 "친구"처럼 살아가는 모습이다. 케토톱 "볼링"편은 즐거움을 쫓는 노년 커플들의 달라진 가치관과 사랑법을 보여준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