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특별히 새롭거나 깜짝 놀랄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경제운영의 방향을 포함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끈다. 특히 개혁의 지속과 함께 화합을 강조한 것은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있어 대화에 상당한 비중을 둘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야영수회담을 공식 제의한 것도 대화를 통해 여야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김 대통령의 경축사가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부분을 경제문제에 할애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는 경제살리기가 김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국정운영의 핵심과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풀이해도 좋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구조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개혁에 따른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타협보다는 좀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우리는 의견을 같이한다.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튼튼한 경제체질을 갖추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 대통령이 밝힌 경제운영의 방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IMF 졸업 후 외부의 간섭없이 본격적으로 펼쳐질'DJ노믹스'의 핵심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중산·서민층의 생활안정에 초점을 둔 과감한 대책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시중 집세의 절반만 부담하는 국민임대주택을 8조4천억원을 들여 3년 동안 20만가구나 짓겠다는 약속은 정부가 10만가구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에 비추어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중산·서민층의 보호는 장기적으로 볼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정책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경제현실에서 소모성 사회복지분야의 지출을 갑자기 대폭적으로 늘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는 다각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늘린다 하더라도 현실을 감안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김 대통령이 기업의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를 누차 강조하면서도 기업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기업지배구조가 선진화되어야만 기업에 대한 규제도 완화될 것"이라고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도 현실인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도 현실과의 접목에 실패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