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아래로는 1,280원을 지지선으로, 위로는 1,290원을 저항선으로 놓고 꽁꽁 묶여있다. 지난주 6월 초 이후 처음으로 1,270원대를 경험하면서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형성됐던 1,280원에 대한 경계감이 다소 희석돼 추가 하락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달러 약세보다 엔 약세가 두드러지면서 시장 전망도 갈지자 행보다. 미국 경기 회복 지연과 부시 행정부의 달러 강세 정책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으나 엔화 역시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과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 정책 발표로 약세가 불거질 기미를 띠면서 원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14일 달러/원 환율은 지난주부터 이어진 하락과 상승의 외줄타기에서 벗어나 이틀 내리 상승했다. 지난 9일이후 처음으로 1,290원대에 잠시 올라섰다가 1,288.50원에 마감했다. 외환거래가 업체들의 실수를 동반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으로 쉽사리 당기거나 밀어낼 수가 없는 상황에서 향후 전망은 시계제로 상태다. 상반된 요인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휴가철을 끝내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시점이나 현대투신증권이나 대우차의 외자유치 여부에 의한 수급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오히려 농후해졌다. ◆ 달러 약세 vs 엔 약세 = BOJ는 이날 최근 몇 달 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고수했던 기존 통화정책을 풀었다. 시중은행의 당좌예금 한도를 5조엔에서 6조엔으로 늘리고 월간 국채 매수 규모를 당초 4,000억엔에서 6,000억엔 규모로 확대키로 했다. 달러/엔 환율은 이에 따라 런던장에서 123.16엔까지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기존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음에도 일본은행은 경기회복을 위해 통화 확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모건스탠리 딘워터의 통화전략가인 토루 우메모토는 "BOJ의 발표는 향후 계속적인 통화 확대에 나설 것이란 기대에 자극을 주고 있다"며 "달러/엔이 빠른 시일내 125.50엔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로 엔 약세가 다시 불이 지펴진 것 같다"며 "엔 약세가 기정 사실화된 상황에서 달러 약세가 불거졌으나 다시 엔 약세 쪽으로 기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 완화로 인해 일본 경기 회복이 빨라질 것이란 기대는 약하다. 그러나 달러화의 약세 진행에 대한 견해도 만만찮다. 이날 발표예정인 미국의 7월 소매판매는 4개월만에 처음 떨어진 0.2%의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전달에는 0.2% 상승세를 보였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것은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뒤로 돌리게 될 것이며 달러화의 약세도 이어진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엔화와 달러화가 경쟁적으로 약세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엔화 약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원화 입장에서 달러화 약세에 따라 역외세력의 매수세가 약해진다면 원화 약세 진행 속도는 자연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이날 1,290원 이상에서 매도 물량이 많아 1,280원대를 회복했지만 1,280원 아래서는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래저래 상반된 요인들이 환율의 발목을 잡고 있어 최근 환율은 '1,280∼1,290원'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주변부, 대외 요인에 종속 = 최근 환율의 안정세는 방향을 잡기 힘든 시장 참가자들의 혼돈에 근거한다. 상승과 하락을 매일 같이 뒤집으며 쉽사리 포지션을 가져가게 힘들게끔 시장이 움직이는데다 외부 변수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다. 이날 엔화 약세가 급하게 진행됐음에도 시장 참가자들이 과감한 매수(롱)플레이에 나서지 못한 것은 실수를 동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외세력도 조용해 달러/원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범위내의 흐름을 이은 셈. 이같은 것들이 이날 엔화 방향을 따르면서도 속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났던 이유다.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은 논의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AIG의 현대투신 인수나 GM의 대우차 인수가 예상보다 시간이 끌리는 것도 수급에 의한 장세 변동 기대감을 늦추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환율이 국내 펀더멘털보다 '외국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바뀌고 있다"며 "외부에서 환율이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반된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업체들의 실수를 동반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환율이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여름철을 지나서야 업체들이 돌아옴을 감안하면 당분간 박스권 이탈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대외 요인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국에 의해 형성돼 시장 자체적으로 증식된 1,280원에 대한 경계감도 아래쪽으로 흐름을 계속 막고 있다. 최근 물가 불안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고 3월부터 감소세를 잇고 있는 수출을 위해 환율레벨을 좀 더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수출 드라이브를 위해 가장 쉽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율 상승'이란 무기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회복의 큰 축에 수출 회복도 달려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이같이 단순한 방정식에 의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보다 더 나쁜 일본 경제의 상황은 엔화 약세를 좀 더 진전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오름세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고점 매도에 대한 매력을 지닌 거래 형태뿐 아니라 향후 시장에 공급될 외자유치분 등은 언제나 환율 상승시 부담감을 안겨줄 요인이다. 달러화나 엔화가 오는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에나 방향을 잡을 것이란 기대도 거래에 목마른 참가자들의 희망사항 일지도 모른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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