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 <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결국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그의 신사참배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경고해 왔다. 일본 총리가 주변국의 비등하는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신사를 참배한 행위는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미래에 대한 신 군국주의적 도전의 다짐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 지역의 발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새로운 위기의식을 강요하는 사건이었다. 일본 총리가 참배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었던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이 신사는 현재에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곳에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행위는 일본의 패전 후에 공식화됐던 정·교분리 정책을 스스로 어긴 사건이다. 그것은 패전 전의 '제정일치'로 완전 복귀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군국주의 망령을 햇볕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려는 저의임을 간파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에 대한 또 다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는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 과정에서 무수한 생령들을 도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1천3백여만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을 살육했다. 그리고 무고한 일본 국민 2백50여만명이 전쟁으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양심세력도 잘 알고 있기에,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사건을 통해 확인된 군국주의의 망령은 일본 안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물론 일본 총리는 군국주의 부활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분리해 말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며,주변의 비난에 대한 유치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 극우세력의 주요 근거지가 되고 있음을 일본 정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곳을 참배하는 행위가 군국주의와 무관하다는 말은 궤변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일지라도 그 말의 모순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지하의 영령들도 한탄할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역사를 왜곡하고 망각하고자 기를 쓰는 총리를 가진 불행한 나라가 됐다. 일본 총리는 자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국주의에 대한 회고와 찬양이라는 부박한 망국풍조에 편승해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려는 3류 정상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행위는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총리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에 대한 공동선언'을 실천적으로 무효화한 행위다. 그럼에도 일본의 후쿠다 관방장관은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중국 및 한국 요로의 인사와 아시아·태평양의 미래와 평화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제국주의 내지 군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피해를 보았던 주변국에 대한 충분한 사과 없이는 새로운 미래나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아시아·태평양의 미래와 평화를 위한 대화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만행에 대한 참회와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공식적 사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가 없이는 한·일 양국 간에 진정한 파트너십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얼마 안가 한·일 양국은 월드컵 경기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인류의 잔치가 돼야야할 이 경기가 원만히 치러질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다짐하는 이 경기의 개막식에선 적어도 이 지역에서 문제됐던 군국주의에 대한 참회가 공식적으로 거론돼야 한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공식적 사과 없이는 인류의 평화를 위한 잔치에 아시아인을 모독한 일본 총리와 자리를 함께 해서는 안된다. 그것 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chokwangkorea@hanmail.net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