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가열(苛烈)할수록/주위가 어지러울수록/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배워야할 필요가 있다"(황동규 "어떤 개인날") 맥주시장에 있어 90년대는 "총칼없는 전쟁의 시대"였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OB맥주는 크라운맥주를 80:20의 점유율로 압도하면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했다. 그러나 쓴맛을 보아온 크라운이 93년 하이트를 들고 나오자 OB의 타격은 컸다. 그리고 미미한 수준에서 머물 수 있었던 피해를 확산시켰던 것은 OB 스스로의 흔들림이었다. 하이트를 막기 위해 OB아이스,넥스 등 구원투수를 내놓고 멀티브랜드 전략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비열처리 맥주" 카스까지 등장해 OB는 사면초가의 형국에 빠져들었다. 이런 가운데 OB의 기사회생책은 흔들리지 않는 자세,곧 맥주의 기본을 찾는데서 나왔다. "맥주란 결국 물맛이 아니라 맥주맛으로 마신다. 경쟁자가 축구를 잘한다고 우리까지 축구화를 신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야구를 잘 하면 된다" OB는 하이트에 대응하기 위해 "맛"이라는 컨셉트를 내세워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잘 익은 맥주"라는 컨셉트를 박중훈과 최종원의 "랄랄라,라거주세요"라는 재밌는 표현에 담아 화제를 모았다. "주장"이 아니라 "유머"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 모았던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부서져본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유영주 "시멘트") 시인들의 이같은 통찰력은 광고.마케팅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다. 김민기 경주대학교 방송언론광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