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는 중국 노(魯)나라 미생이란 사람에 대한 얘기다.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미생은 어느날 한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몇시간을 기다렸지만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큰 비가 내려 개울물이 불어났다. 그래도 미생은 "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계속 기다려야 한다"면서 교각을 붙잡고 버텼고 결국 급류에 떠내려 가고 말았다. 굳이 고사를 들먹이는 것은 진념 경제팀의 모양새가 꼭 이 노나라의 미생같아서다. 미생의 약속이 '다리밑 만남'이라면 진 경제팀의 약속은 '2003년 균형재정 달성'이다. 2003년부터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진 경제팀은 금과옥조로 지켜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2003년'과 '균형재정'이라는 두개의 단어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실 균형재정이라는 정책목표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99년 초였고 당시 목표는 '2006년 균형재정 달성'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경기가 좋고 세금도 많이 들어오자 욕심을 냈다. 그해 9월 균형재정 목표시기를 2004년으로 앞당겼다. 이후 청와대 등에서 대통령 임기(2002년) 전으로 맞춰달라는 지시가 기획예산처로 내려갔고 결국 '2003년 균형재정'이라는 목표가 제시됐다. 사정이 이렇다면 경제 상황이 딴 판으로 바뀐 지금엔 목표를 수정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불황으로 세수 감소가 확실시 되고,앞으로 7년간 갚아야 할 공적자금이 1백20조원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목표 달성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진 경제팀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미생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입으로는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대책은 따로 놀고 있다. 2차 추경편성,2002년 적자재정 편성과 같은 정공법 대신 공기업과 공공기금 등을 동원하는 편법을 선택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욕심은 쉽게 키우면서도 절대로 물러서지는 않는,그래서 유연한 정책결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관료주의 관성인 셈이다. 강물은 점점 불어나는데 진 경제팀은 언제쯤 다리밑을 벗어날 것인가. 김인식 경제부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