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의 김모(50)씨는 10일 여윳돈을 굴리기 위해 은행에 들렀다가 낮은 이자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1억원을 1년짜리 정기예금에 넣고 싶었던 그에게 은행이 제시한 금리는 연 5.2%. 이자는 1년동안 5백2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상품에 돈을 맡겼다가 며칠전 만기 원리금을 되찾은 동생의 통장에는 분명 연 7.5%의 금리가 찍혀 있었다. 금리 차이만 2.3%포인트. 돈을 따져보니 동생보다 무려 2백30만원이나 적었다. 그나마 세금을 떼고 나면 김씨의 손에 들어오는 이자는 매월 36만1천8백원. 이자가 너무 적어 망설이던 그는 "조만간 금리가 또 내려갈 것"이라는 은행원의 말에 지금이라도 예금하는게 낫겠다고 결심했다. 예전 같으면 불안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실적배당형 상품에 5천만원을 넣고 나머지는 정기예금으로 돈을 맡겼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들의 재테크 전략이 확 바뀌고 있다. 금리가 다소 낮아도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던 투자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금리가 높은 상품을 기웃거리고 있다. 불과 1년여새 예금금리가 최고 3%포인트 이상 떨어지면서 이자 수입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올 8월 초까지 6차례나 정기예금 금리를 내렸다. 8개월여 만에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금리가 연 7.0%에서 4.9%까지 2.1%포인트나 내려갔다.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실질 이자가 마이너스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김성엽 하나은행 재테크팀장은 "최근 들어 은행권의 초저금리에 실망한 고객들이 위험은 높지만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실적형 상품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면서 "총 금융자산의 30∼40% 정도를 특정금전신탁이나 주식형 상품으로 바꾸는 고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실적배당상품 중에서도 리스크가 낮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원금보장형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생활비를 이자수입에 주로 의존하는 퇴직자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2년 전 퇴직한 박모(57)씨는 "올들어 이자수입이 지난해에 비해 30%나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최근 재개발바람을 타고 부동산사업이 유망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몇군데 알아봤지만 막차를 탈 위험이 있다는 조언을 듣고 고민 중"이라면서 "얼마 안되는 목돈을 어떻게 굴려서 생활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임대용 소형아파트의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창업.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주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초저금리시대가 가져온 신풍속도중 하나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대출을 받아 이 기회에 창업을 해보려는 젊은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반해 거액 금융자산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씀씀이는 갈수록 헤퍼지는 양극화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쥐꼬리만한" 이자를 받느니 차라리 쓰고 말자는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의 에쿠스는 올들어 지난 7월까지 7천7백91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2% 증가한 반면 소형차인 베르나의 판매대수는 2만8천4백20대로 17% 줄어들었다. 이동원 이화여대 교수(사회학과)는 "과거 고금리시대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이 급속한 금리 하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게다가 앞으로의 금리전망마저 불투명해 국민들의 불안심리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리가 떨어지면서 목돈마련이 어려워지면 중산층이하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증폭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