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6일부터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방문길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러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작년 7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은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과 베이징에서의 북·중 정상회담에 이은 또다른 정상외교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는 지난해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올 초부터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러가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등 동반자관계를 재확인한 것은 향후 북한의 정책방향과 남북관계 및 한반도 주변정세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북·러정상회담의 성사는 6·15 정상회담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 노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이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의 특수관계를 완전히 복원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북한으로서는 정치외교 및 군사적인 측면과 아울러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실리가 보장되는 만큼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러시아는 개혁 개방 이후 친서방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나 의회내에서 공산당이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북·러관계의 복원은 북한으로선 체제유지와 관련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장받는 한편 지난 10년간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미사일방어망구축에 대항해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는 한편 북한의 미사일문제와 관련,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고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러시아가 이해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은 향후 전개될 북·미협상에서 북한측이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군사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 위원장은 열차 여행을 통해 러시아 군사력의 핵심 지역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북한이 신형 무기들을 도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옴스크의 탱크 공장, 모스크바의 우주항공센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잠수함 공장 방문 등은 이러한 김 위원장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북한이 강력한 군사력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의 또다른 중요한 성과는 북한의 경제 발전과 관련해 러시아의 새로운 지원을 확보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북한 경제침체의 주요 원인이었던 구소련의 붕괴와 이에 따른 대북경제지원 중단문제가 이번 방문을 통해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더구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한반도에 연결하기로 한 공동선언의 내용은 러시아와 북한 모두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남북문제에 대해서 외부세력의 방해를 저지하고자 하는 북한측 주장이 공동선언에 채택됨으로써 남북철도의 연결과 더불어 한반도에서의 러시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되었으며 반면 미·일과의 공조체제는 견제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4자회담이나 남북 당사자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논의 가능성은 희박해지지 않았나 우려되기도 한다. 다소 시대착오적인 기나긴 열차여행을 통해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그간의 행적이나 모스크바에서의 정상회담 및 북·러 공동선언을 통해 그의 방문 여정이 치밀한 계산과 전략하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김 위원장에 대해 러시아 역시 개혁 개방 이후 실추된 역량을 추스르면서 동북아 및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이해와 경제적 실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북·러간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대해 현 단계에서 우려할 필요는 없으나 향후 우리의 국가적 이해와 남북관계의 진정한 개선을 위해서 냉철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한 전략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