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황의 골이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다. 미·일 경기침체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은 그렇다 치고,정쟁의 중단을 통한 상생 정치의 복원과 선심성 공약 남발의 중단으로 경제회복의 주변여건을 정화해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이 융성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관용의 정신과 개방적 성향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열등하고,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안인보다 열위에 있으며,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그 어떤 민족보다 광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두명의 그리스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디오니시오스는 로마인의 종교의식이 그 요인이라고 말한다. 로마종교는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기보다는 포용할 줄 알았고 그를 통해 다른 민족들을 동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치지도자이기도 했던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가 로마를 융성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했다.각각 공동체 일부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왕정과 귀족정,민주정이란 정치체제 중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독자적인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거국일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2천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있는 유적도 아니며,민족이 다르고 종교와 인종 및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해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관용과 개방성이 아닐까. 고대 로마인들의 유산을 우리 정치인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깊어 가는 경제의 주름살을 생각할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경제불황을 조기에 수습하는 또 다른 방편 중의 하나는 경제외적 요인,특히 정치적 요인을 경제정책 입안과정에서 단호히 배격하는 중심 철학의 확립이며,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적자와 2003년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과 국채의 원금상환 및 이자부담을 고려할 경우 현재의 재정적자를 방치한다면 안정적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공적자금의 회수율이 낮고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씀씀이를 줄이고 세금을 더 걷는 것 외엔 왕도(王道)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세금 깎아주기' 정책 및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완화 등 일련의 정책들은 중장기 경제발전이나 안정은 뒷전으로 밀려나고,내년 선거 등을 의식한 당근정책으로 간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어 걱정된다. 외환위기 이후 계층간 소득불균형 심화를 해소하기 위해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세제개편이 단행돼 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근로자소득공제폭 확대방안은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자수를 늘려 국민개세주의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소득세 전반의 체계를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 전체 근로자의 54% 정도만 소득세를 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미 한 푼의 세금도 내고 있지 않은 46%의 저소득 근로자들에게는 소득공제폭 확대로 아무런 혜택을 안겨 줄 수 없다. 소득공제폭 확대가 계층간 소득불균형을 완화시키는 제도로는 커다란 맹점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들이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왔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선진국일수록 독립적인 통화정책과 중·장기에 걸친 균형예산의 입법화 등 엄격한 제도적 장치와 이의 충실한 실천으로 경제외적 요인에 의한 경제정책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적 동기에 의한 선심성 정책이 안정적 성장의 최대 걸림돌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34년만에 최악이란 수출실적이 말해 주듯 경기침체의 늪이 광범하고 그 골이 깊다.정쟁없는 정치와 선심성 공약 없는 정치로 경제회복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mw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