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번화가 샹젤리제의 루이뷔통 매장. 본격 바캉스 시즌인 요즘 유난히 한국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일반 관광객이 아닌 배낭여행 대학생들이다. 여행경비를 아껴 선물 사러 들른 학생들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일본인 관광객 '대리쇼핑객'이기 때문이다. 루이뷔통 핸드백은 일본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외제품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파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라 루이뷔통 매장이다. 일본에 직영 매장이 있긴 하지만 가격이 파리와 비교해 거의 40%나 비싸다. 그러다 보니 파리 매장은 일본인이 프랑스에 오면 꼭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됐다. 하지만 루이뷔통은 프랑스에서 싸게 구입된 제품이 일본 내에서 불법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매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즉 고객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상품수가 정해져 있으며,일정금액 이상은 현금을 받지 않는다. 이같은 구매 제한으로 대량 쇼핑이 어려워지자 한국이나 중국 대리구매인을 찾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루이뷔통 매장 주변 카페와 골목에선 이들과 일본인 관광객 중간 거래인 사이에 벌어지는 즉석 흥정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장 바깥에서 서너시간 줄을 서 기다렸다 대리쇼핑 해주면 1백∼2백달러는 쉽게 번다. 유럽여행 중 파리에 들렀다 힘들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발견한 일부 배낭족들은 아예 여행을 포기하고 파리에 눌러 앉기도 한다. 싼 민박집에 머무르며 샹젤리제에 나와 대리쇼핑을 한다. 잦은 매장 출입으로 얼굴이 알려져 구매가 어렵게 되면 새로운 대리인으로 바꾼다. 이같은 대리구매가 성행하자 정작 제돈 내고 물품을 사는 한국인 고객까지 쇼핑 심부름꾼으로 오해 받아 푸대접을 받을 정도다. 서울서 왔다는 모 대학 2년생 L군은 3주 째 파리에 머물고 있다. 물론 당초 마음먹었던 '배낭 메고 유럽 문화 익히기' 계획은 완전히 포기했다. 손쉬운 아르바이트 유혹에 빠져 '일본인 루이뷔통 암거래'에 황금 같은 방학을 낭비하는 배낭 대학생은 단지 L군 혼자만이 아니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