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 방문했던 멕시코를 두가지 그림으로 오래 기억할 것 같다. 하나는 국립미술관에서 본 아즈텍 황제가 고문당하는 장면이고,다른 하나는 멕시코시티 조칼로 광장에 있는 국민궁전에서 구경한 멕시코 역사를 묘사한 벽화다. 첫째의 경우 그 화가의 이름은 잊고 말았다. 미술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이 유화(油畵)는 멕시코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아즈텍 황제를 쇠사슬에 묶어 놓고 그의 발 아래에 불을 지펴 고문하는 장면이다. 코르테스는 당시 스페인 영토였던 쿠바 총독의 지시를 받고 멕시코 정복 길에 오른다. 대포 10문에,6백60명의 군사를 데리고 떠난 코르테스는 곡절 끝에 1521년 아즈텍 왕국의 수도(지금의 멕시코시티)에 입성한다. 그를 '하늘이 보낸 사절'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는 순진한(?) 아즈텍 황제는 코르테스의 속임수에 붙잡혀 온갖 행패를 당하게 된다.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아즈텍 집권자들의 발을 올려 놓아 불 고문을 가하는 장면이 너무도 참혹하게 느껴졌다. 우리 역사에서도 여러가지 불 고문 장면을 읽을 수 있긴 하지만,그런 대목을 화가가 묘사한 것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때 내가 참가하고 있던 '제21차 세계과학사회의' 장소는 멕시코 국립미술관의 바로 앞 건물이었고,회의장 옆문으로 들어 가는 광산박물관에서는 고문기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그것을 구경하러 갈 수가 없었다. 끔찍한 장면은 이 그림 한 장으로 충분한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더 오래 기억될 그림은 국민궁전의 벽화일 것으로 보인다. 이 벽화는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작품이다. 4각형으로 구성된 스페인식 궁전 건물의 안쪽 반을 차지할 정도로 길게 연장해 그려 놓은 대규모의 벽화에는 온갖 것이 다 묘사돼 있다. 멕시코 원주민이던 아즈텍의 기원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뱀과 선인장의 묘사에서 시작해,스페인 정복자들의 잔인한 살상 장면,원주민들의 코코아 만들기와 데킬라 술 만드는 장면,그리고 반세기 남짓 전에 멕시코를 흔들었다는 사회주의 열풍을 그리기 위해 칼 마르크스의 얼굴까지 등장한다. 우리 역사를 주제로도 충분히 그럴싸한 벽화를 그릴 수 있을 듯한데,한국 어디에 그런 그림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거기서 머지않은 시내 한복판에는 바로 그 화가 리베라의 기념관이 있었다. 그 기념관에도 찾아가 보았다. 거기에는 또 다른 대규모 벽화가 있었다. 이번에는 멕시코 역사의 주인공 수백명을 등장시킨 인물화 벽화다. 과연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은 멕시코와 어떻게 비교될까 생각하게 됐다. 전혀 자랑할 수 없을 듯하다. 거리에는 거지와 불구자들이 득실거리고,공항에서부터 거짓말이 판을 치는 멕시코지만,이 나라를 얕잡아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멕시코 여행을 반추하고 있는 동안,같은 중남미의 또 다른 대표적 나라에서는 아주 특별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페루에서는 새로 당선된 원주민 출신 대통령 톨레도가 잉카문명의 유적지 마추피추에 올라가 잉카족 방식의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가난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혼혈 인디오 가문의 16남매 가운데 아홉째인 구두닦이 소년 톨레도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친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페루는 1812년 독립한 이래 줄곧 백인 엘리트들이 대통령직을 차지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계인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됐지만,원주민 출신은 톨레도가 처음이란다. 마야,아즈텍,잉카는 중남미 원주민 문명의 대표격이다. 앞의 둘이 멕시코의 옛날에 해당한다면,잉카는 바로 페루의 원주민 문명이다. 코르테스가 1521년 아즈텍을 유린하고 스페인 깃발을 멕시코에 세운 것처럼,같은 고향 출신의 피사로(1478∼1541)는 1532년 보병 1백10명과 기병 67명의 군대로 3만명의 원주민 군대를 속임수로 순식간에 물리치고 잉카 황제를 교수형에 처해 페루를 역시 스페인 식민지로 만들었다. 톨레도를 보면서 4백70년 만에 잉카제국이 잉카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도 된다. 페루에선 잉카문명이 어떻게 보존되고,그려져 있는지 한번 가 보고 싶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