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하는 샐러리맨과 연봉 10억원의 접점을 찾긴 쉽지 않다. 국내 자동차 판매왕도 이 정도의 연봉을 꿈꾸긴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외국계 증권사의 브로커중 탁월한 영업 수완을 지닌 베테랑들이 연봉 10억원을 기대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라 하더라도 최고경영자(CEO)에게 10억원대의 연봉을 주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1년에 10억원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선 매일 꼬박 꼬박 3백만원 가량씩 벌어야 한다. 식당으로 치면 하루 1천만원의 매출을 기록해야 그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다. 보험설계사로 나선 지 8년 만에 연봉 10억원을 받는 판매왕 자리에 오른 삼성생명 대구지점 예영숙(43) 팀장.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보험 여왕의 왕관을 썼다. 설계사라면 누구나 한번은 꼭 써보고 싶은 왕관을 거푸 차지한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 팀장은 문학소녀의 꿈을 간직한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 그가 보험 설계사라는 생소한 길로 들어선 것은 지난 94년.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남편이 가입한 보험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삼성생명 영업소를 찾았다가 보험 영업에 매력을 느꼈다. 가족의 반대가 완강했지만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프로 못지않게 차근 차근 영업기반을 닦았다. 그는 고객 입장에서 영업을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가계 총 수입의 10% 이내에서 보험에 가입하도록 권유한다. 대구에 있는 한 건설업체에 다니는 40대 중반 김 모 부장이 최근 종신보험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도 예 팀장은 고민했다. 한달에 30만원씩 부어야 하는 보험료가 고객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였다. 생각 끝에 5만원대의 파워남성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는 지난 한햇동안 4백90건의 보험 계약을 맺고 1백57억원의 보험료 수입을 거뒀다. 그동안 인연을 맺은 고객만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계약 건수를 합치면 1천8백건 가량 된다. 삼성생명이 예 팀장을 '움직이는 영업소'라고 부를 정도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회사측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계약 유지율이 거의 1백%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우수 고객을 확보하는게 예 팀장의 영업 비결이다. 회사측은 영업 비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심히 그를 지켜봤지만 딱 떨어지는 노하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진지하게 사람을 대하고 성실하게 고객을 관리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예 팀장은 다른 설계사와 다른 뭔가를 분명히 갖고 있다. 그는 섣불리 보험 상품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전에 고객을 자신의 편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계약을 맺거나 그렇지 않거나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의 소중한 고객이다. 인간 관계를 중시한 덕분에 주위 사람들이 새로운 고객을 소개시켜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 보험영업 현실에 비춰볼 때 고객이 친지나 동료에게 보험 설계사를 소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고객들이 예 팀장을 높게 평가하고 잠재 고객을 소개하는 것은 '한번 고객은 평생 고객'이란 단순한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에 6~7건의 보험 상담을 한다. 이중 3~4건이 계약으로 이어진다. 고객이 기꺼이 예 팀장에게 보험 상담을 받으려는 데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는 전문가로서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보험 상담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경제동향과 관련한 정보를 끊임없이 축적한다. 이를 위해 매일같이 경제신문을 샅샅이 읽는다. 재무 설계사로서 재테크 상담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준비성은 의상 선택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예 팀장은 잦게는 하루에 대여섯번 옷을 갈아입는다. 사무실에는 10여벌 이상의 옷이 준비돼 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옷을 선택해 입기 위해서다. 그는 옷차림은 첫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인 만큼 단 한번도 번거롭다고 여긴 적이 없다고 한다. 전문성과 함께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설계사라야 고객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게 예 팀장의 설명이다. 또 다른 강점을 추가하면 겸손함을 들 수 있다. 그는 현재 국내 최고의 설계사로 만족하지 않는다. 3∼4년 후에 영업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를 고민한다. 영업맨은 미래 영업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대구에 있는 계명대 통상학부 야간에 다니면서 만학의 열정을 쏟는 것도 다름 아닌 미래를 준비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그가 60세까지 보험 영업을 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준비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하루를 초단위로 나눠 써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오전 8시40분께 출근하자마자 상담을 원하는 고객의 전화가 온다. 고객의 얘기를 충분히 듣다 보면 한 통화에 20∼30분이 훌쩍 지난다. 직접 찾아오는 고객도 적지 않다. 고객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면 점심을 챙기지 못할 때도 많다. 발로 뛰는 영업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 팀장은 "일일이 고객을 찾는 보험 영업 시대는 지났다"며 "보험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는 고객이 유능한 설계사를 찾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가지 보험상품으로 종합 보장을 받길 원하는 고객 취향을 고려하면 이같은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바쁜 중에도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주부로서의 역할이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철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 평택에 있는 공기업체에 근무하는 남편은 주말에야 집에 온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가 가장 행복할 때라며 예 팀장은 활짝 웃는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