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 < 자민련 국회의원hakwonk@assembly.go.kr > 초등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수업시간에 비행기 모양의 연필깎이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서울에 사는 삼촌이 선물로 사오셨다는데 연필을 넣고 돌리기만 하면 예쁘게 깎아지는 것을 보고 나는 신기하고도 부러웠다. 쉬는 시간이 되어 그 친구가 잠시 나간 사이에 그 연필깎이를 만져보면서 나도 이런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충동심이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 친구가 막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연필깎이를 얼른 노트로 덮어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됐다. 그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연필깎이를 찾더니 대뜸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모른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 친구는 책상 속을 뒤지더니 급기야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겁이 난 나는 노트 밑에 있던 연필깎이를 살그머니 호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급기야 그 친구는 선생님께 일러바쳤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중단하고 '훔친 학생'이 나올 때까지 벌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손을 들게 하셨다. 어쩌면 좋은가. 진즉 "장난이었어"하면서 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돌려줄 기회를 다 놓치고 일이 점점 더 커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반장인 내가 훔쳤다는 사실을 알려 선생님과 급우들에게 실망을 주기는 정말 싫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3㎞가 넘는 거리가 그날 따라 유난히 멀고도 멀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집에 거의 왔을 무렵 나는 결심을 하고 발걸음을 학교로 되돌렸다. 아무도 없는 교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선생님 교탁 위에 연필깎이를 올려놓고 얼른 빠져 나왔다. 운동장 끝에 이르러 이상한 예감에 교실 쪽을 뒤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서있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마도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후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다. 이 '사건'은 나의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항상 그때처럼 그 선생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만 같다. 지금 나는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앞으로는 어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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