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창바이(長白)그룹 구밍추(顧鳴初)총재. 직원 1만여명을 거느린 그룹 총수인 그는 "이제 제대로 기업 경영 여건이 조성됐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이달 초 중국정부가 발표한 '새 사회보장체계 프로젝트'다. 이 제도는 국유기업이 책임졌던 각종 사회보장을 국가가 맡는다는 게 뼈대. 선양에서 3년간 시범 실시된 후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중국정부는 이를 위해 새 기금 관리회사를 설립하는 한편 국가 소유주식 매각 등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구 총재는 "그동안 퇴직 양로 의료 등 각종 복지에 회사 자원의 70%를 쏟고 나머지 30%만을 기업경영에 투입해야 했다"며 "이번 조치로 2년 후 이 상황은 역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그가 흥분한 실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로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는 순간 노사간 고용계약은 끝난다. 기업이 퇴직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된 것이다. 중국 기업의 특성인 철밥통(鐵飯椀·평생고용)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중국 국유기업은 그동안 해고 근로자에게 매달 해고 당시 급여의 60∼70%에 해당하는'퇴휴(退休)수당'을 줘야 했다. 애써 직원을 해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업자란 말 대신 '샤강(下崗·일자리에서 내려온다)노동자'로 불린다. 잠시 일손을 놓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실업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새 제도는 선양 노동자들에게도 복음(福音)이다. 국가가 기금을 운영, 보다 안정적인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샤강 노동자들은 전 직장의 경영난으로 퇴직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국유기업의 10%가 몰려있는 선양의 현재 실업률은 약 20%. 샤강 노동자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펴지게 됐다. 이번 조치로 국유기업은 경영에서의 사회주의 색채를 털어내게 됐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로 경쟁력을 높이는 일만 남았다. WTO 가입을 앞둔 중국기업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