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꼭 끼는게 있습니다. 혹시 "어음"이란 걸 들어 보았나요. 어음은 수표나 현금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돈 대신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어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은 어음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 최근 철수의 학교에선 벼룩시장이 열렸습니다. 자기가 쓰던 학용품이나 게임기 같은 물건을 싼 값에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시장이지요. 철수는 이 벼룩시장에서 중고 게임기를 사기 위해 그동안 용돈을 조금씩 저축해 왔습니다. 벼룩시장이 선 날 철수는 마음에 꼭 드는 게임기 하나를 발견했어요. 친한 친구인 영희가 1만원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이었지요. 비록 컬러 게임기는 아니지만 마음에 들어 영희에게 게임기를 사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철수가 게임기를 사기 위해 모은 돈은 8천원 밖에 안됐던 거예요. 영희의 게임기 값보다 2천원이 모자란 거지요. 철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일주일 뒤에 친구 영수로부터 빌려준 돈 2천원을 받기로 돼 있다는 걸 떠올렸지요. 영수로부터 받을 돈을 영희가 그때 직접 받도록 약속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영희에게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어요. 대신 영수가 꼭 2천원을 자기에게 주도록 약속을 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철수는 "일주일 뒤에 영수는 영희에게 2천원을 줄 것"이라고 써 주고 자기이름 밑에 서명을 해줬지요. 영희는 일주일 뒤에 영수에게 그 종이를 보여 주면서 돈을 달라고 했고, 영수는 약속을 정말 철수가 했는지 확인한 후에 돈을 주었지요. 바로 이때 철수가 영희에게 써 준 것이 "어음"이란 것입니다. 돈을 지불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언제, 얼마를 지불하겠다고 돈 받을 사람에게 써주는 일종의 "약속증서"지요.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음은 실제 돈을 지불하는 곳을 은행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은행과 미리 계약을 해놓고 어음용지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미리 돈을 은행에 맡겨둘 필요는 없습니다. 돈을 실제 주기로 한 날까지만 그만큼의 돈을 넣어 놓으면 되지요. 그게 수표와 다른 점이예요. 수표는 발행할 때 반드시 은행에 그만큼의 돈을 맡겨 놓고 발행해 야 합니다. 그런만큼 수표는 현금과 똑같이 쓰이지요. 많은 돈을 주고 받을 때 현금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수표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음은 돈을 미리 맡겨 놓지 않고도 돈 받을 사람에게 발행 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지금 당장 돈도 없고, 또 아직 은행에 돈을 맡겨 놓지 않았더라도 어음을 발행해서 물건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실제로 돈이 없으면서도 마치 돈이 있는 것처럼 해서 거래를 할 수가 있으니까, 어음이 돈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지금 당장 현금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수표처럼 현금과 같이 쓰일 순 없습니다. 어음은 단지 언제까지 돈을 주겠다는 약속 증서일 뿐이지요. 어음과 수표가 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어음은 반드시 어음을 써준 사람이 지정한 은행의 특정 지점에서만 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반면 수표는 지정은행의 어떤 지점에서도 현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만큼 수표가 어음보다 현금에 더 가깝다는 뜻이기도 한거예요. 그런데 어음에서 약속한 대로 돈을 지불하기로 한 날까지 어음을 발행한 사람이 돈을 은행에 맡겨 놓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에선 어음을 갖고 온 사람에게 돈을 내줄 수가 없겠죠. 이런 경우를 "부도가 났다"고 합니다. 은행에 미리 돈을 맡겨 놓지 않아 어음을 들고 간 사람이 돈을 찾을 수 없게 되니까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죠.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어음 부도를 낸 사람은 다시 어음을 발행할 수 없게 해 계속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겠지요. 그래서 은행은 어음을 발행해 놓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공개해 다시는 어음을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지요. 그러니까 어음을 발행한 사람은 현금을 지급하기로 한 날까지는 반드시 은행에 그만큼의 돈을 맡겨 놓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음에 대해선 발행한 사람이 실제 돈을 줘야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지요. 은행은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따라서 은행에선 어음용지를 아무에게나 마구 나눠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음이 은행에 제시되면 돈을 맡겨 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눠줘 어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지요. 이렇게 어음은 우리가 물건을 사고 팔때 돈의 지불을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어음을 발행한 사람은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 전문선 신한은행 재테크팀장 dbmkter@shinh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