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관광명소 콜로세움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스페인광장. 자동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거리 양쪽으로 프라다 구치 페라가모 루이뷔통 까르띠에 등 세계적 명품 로드숍(거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선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은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특히 루이뷔통 가게 앞에는 30m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서는 것도 예사다. 이들 관광객 덕분에 이탈리아는 패션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동대문시장. 세계 최대 패션시장이다.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 모든 패션관련 상품이 한해 약 10조원어치 거래되는 곳이다. 상가수만 32개,좁게는 1평에서 넓게는 5평짜리 점포가 2만7천여개나 몰려 있는 거대 시장이다. 하루 유동인구는 30만명에 달하고 10만명의 도·소매 상인들이 몸담고 있다. 의류수출액도 한해 2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돼 컬러TV 수출액을 2배 이상 추월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동대문시장을 일컬어 '패션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국내 유일의 패션밸리는 지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패션쇼핑몰들이 들어서면서 급부상해왔던 시장이 더 이상 앞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단지 불경기 탓만은 아니다. 침체는 시장 자체의 딜레마에서 비롯된다. 밀리오레가 성공신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줄이어 들어선 쇼핑몰들이 시장의 포화를 재촉,제살 깎아먹기에 급급한 상황이 왔다. 최근 검찰이 이곳 상가의 개발·운영업자들을 구속하면서 드러난 상가 분양,관리,운영의 문제점도 패션밸리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대문시장을 한국의 명소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T(정보기술)산업 못지 않은 고부가산업이기 때문이다. 옷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대체재가 나오지 않는한 의류산업은 사양산업일 수 없다. 더구나 동대문시장은 원부자재 조달에서 완제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산업집적지가 형성돼 있다. 생산에 없어서는 안될 모든 것,판매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 스페인광장이 명품으로 먹고 산다면 동대문시장은 발빠른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거는 곳이다.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동대문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일어서 스페인광장을 추월하길 기대해 본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