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섭 얼마전 수도권지역에 내린 집중 폭우로 주택 2만여가구와 지하철·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5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큰 피해가 있었다. 수해를 당한 주민들은 연일 해당 구청에 가서 농성,'인재다,천재다'하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해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90년대만 하더라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인위적 재난은 물론 지리산 일원의 집중 호우,고성지역의 산불,또 바로 지난 겨울의 설해 등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가 있었다. 그런데 이같은 재난으로 피해를 입으면 '운명'탓으로 돌리고 쉽게 망각하는 우리들의 정서와,또 '예방'보다 '사후'처리에 더 치중하는 각종 제도와 조직은 언젠가 또 다른 대형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슬로우의 '욕구위계론'에 따르면,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안전의 욕구를 찾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사는 생리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안전을 위한 투자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당장 눈앞에 별 위험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다. 99년에 발생한 경기 북부지역의 홍수로 인한 재산피해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1조원을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려면 적어도 1백억달러는 수출해야 가능한 규모인데 한순간의 호우에 잃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피해의 복구비 등은 모두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갔다. 대형 재난은 경제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민심 동요 등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재난은 단지 독립된 재난이 아닌,국가질서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호우 태풍 등으로 인한 재난은 미리 막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초기 단계에서 국민 각자가 정확한 대처능력을 갖고 있다면 귀중한 인명은 물론 재산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95년에 발생한 일본 고베 지진은 진도 7.2에 5천여명이 사망했으나,올해 인도 구자라트에서 발생한 지진은 진도 6.9에 무려 2만여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본의 피해가 적은 이유는 내진 설계,잘 갖추어진 사회 안전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일본인의 안전의식과 체험교육 덕분이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1백50개가 넘는 '안전체험시설'이 있다. 대부분의 안전체험시설은 인위적으로 각종 재난을 체험하고 재난 때의 행동요령을 익히는 훈련시설이다. 우리나라는 헌법 34조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재난관리법 자연재해대책법 민방위기본법 등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체계와 조직을 갖추어 놓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체계는 잘 갖추어졌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사후조치 위주로 정책이 집행된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사후 처리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행정에 있어서 예방에 우선을 두기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10원의 돈을 들여 교육을 시키면 나중에 1백원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할 때 선택은 자명해진다.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하는 '안전의식 고취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정부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얼마 전 어느 회의에 가니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종합체험시설'을 국가 전문행정연수원에서 추진중이라는 보고를 들었다.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현대 복지국가시대에 정부가 추진해야 히는 사업이며,이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syoon@pslab.snu.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