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성과 외무성 등 일본의 중앙부처가 밀집해 있는 도쿄의 가스미가세키 일대는 일본인들에게도 콧대 높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엘리트 공무원들의 일터가 몰려 있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의 신분도 만만치 않다. 또 하나 높은 콧대는 인근의 비싼 땅값과 임대료다. 어지간한 사무용 빌딩은 한달에 평당 4만~5만엔(약 5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정보통신부 산하단체인 소프트웨어개발원이 최근 이 일대에 2백60평 규모의 사무소를 열었다. 한국 IT(정보기술)관련 기업들의 일본시장 진출에 길잡이와 후견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한·일 벤처기업의 인적 교류 확대와 정보 교환을 촉진한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한국 IT산업의 잠재력이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 전세계적 불황으로 곤경에 처한 한국의 IT기업들이 일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무소 개설은 반겨야 될 일이다. 오히려 늦은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능률'과 '실속'이다. IT기업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며 간판을 올리고 있는 건 산자부 산하의 중소기업진흥공단 도쿄 사무소도 마찬가지다. 두 곳은 도보로 10여분이면 닿을 지척에 자리잡고 있다. 중진공이 사무소 개설에 5억원을 투입한데 이어 소프트웨어개발원은 약 30억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능과 목적이 빼닮은 두 단체가 경쟁이라도 하듯 금싸라기 땅에 각자 거점을 마련한 셈이다. 산자부와 정통부는 IT산업과 관련된 역할과 업무권한을 놓고 심심찮게 충돌한게 사실이다. IT산업이 불황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지금도 양측의 갈등과 경쟁의식이 완전 해소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터넷 벤처들의 야망을 북돋우려는 두 부처의 정성이 값진 열매를 맺는다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각각 산하단체를 앞세워 일본에서도 가장 비싼 땅에 대형 사무실을 차려 놓고 '같은 목표'와 '다른 길'을 고집한다면 이만큼 불행한 일이 없다. 세계 최고의 고물가국에서 국민혈세를 쏟아가며 각 부처가 마이웨이를 외쳐댈 만큼 한국은 아직 부자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