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구치소에서 면회신청서를 내고 2분쯤 지났을까. 교도관이 3번 면회실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면회실에 들어서자 창살 너머로 삼진기계의 방종오(42) 사장이 나타났다. 갈색 재소자복을 입은 그는 지난 5월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수감될 때보다 수척해 보였다. 그러나 자세만큼은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그의 차분한 자세는 '사업 얘기'를 꺼내자 흔들리고 말았다. "기업을 살려보려고 밤낮 없이 죽도록 일한 결과가 바로 이런 겁니까"라고 가슴을 치더니 눈물을 주룩 흘렸다. 방 사장을 기자가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의 일이다. 1991년 11월 독일 뒤셀도르프 유리기계박람회에서였다. 이 박람회에 함께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장들은 하루 정도 전시기계를 살펴본 뒤 관광에 나섰으나 기술자 출신인 방 사장은 3박4일간 오직 독일제 유리천공기 앞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신혼기간인데도 밤늦도록 유리천공기 개발에 매달렸다. 덕분에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리천공기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벤처기업의 사장이 됐다. 이같은 그의 연구개발 집념은 수입에 의존하던 기계들을 국산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오던 세척기를 개발해냈는가 하면 독일에서 수입해오던 수평강화로를 개발해 평택에 있는 유리가공업체에 공급했다. 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의 가마코와 BSC 등에 가공기계를 납품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계밖에 모르던 방 사장이 어떻게 철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을까. 그것도 다름아닌 특가법 사기죄로 기소됐을까. 공소장을 보면 그가 사기죄로 걸려든 이유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당초부터 갚을 의사가 없으면서 보증서를 떼갔다는 것이다. 방 사장은 연쇄 부도로 구속되긴 했지만 갚을 의사가 없으면서 돈을 빌려갔다는 누명은 너무나 참기 힘든 일이라고 항변한다. 사실 방 사장이 기술신보를 통해 시설자금을 빌린 이후 한번 만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커다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독감에 걸렸느냐고 묻자 그는 1주일전 횡성농공단지에 있는 공장에서 강화로를 개발하느라 새벽까지 일하다 톱니바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얼굴이 찢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애초부터 돈을 떼먹을 사람이 새 기계를 개발하느라 얼굴까지 찢겨 나갔을까. 그의 부인은 결혼 이후 아직까지 가족끼리 놀러 한번 못 가보고 회사 월급으로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장만해보지 못한 것이 더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면회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방 사장의 장모를 만났다. 그의 장모는 구치소 앞에는 매일이다시피 오지만 직접 면회는 단 한번도 못해봤다고 금세 눈물을 훔친다. 사위가 상처받을까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성실했던 중소기업인이 당하고 있는 너무나 갑갑한 현실 앞에 기자도 맺힌 눈물을 닦지 못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