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초반, 프랑스 법원은 리옹 대학의 젊은 역사학 교수에게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하는 중형을 선고했다. 죄명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 가스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다며 그 존재에 의문을 던진 "네가시오니스트(negationiste)"로 역사의 진실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나치의 만행을 부정하는 행위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해석으로 유명하다. 올해 초 독일에서는 2차 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 경비를 맡았던 전 나치 장교가 반세기만에 반인륜적 행위로 기소됐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법원은 오래전 국외로 도주해 종적을 감춘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 부루너의 궐석 재판을 열고 종신형을 선고했다. 올해 89세로 생존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반인류적 범죄는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나치의 범죄 처벌에는 시효와 예외가 없다는 것이 유럽의 입장이다. 유럽의 역사관에서 보면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결정은 용인할 수 없는 역사부정 행위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유럽은 교과서 파동이 생길 때마다 한일간의 해묵은 감정싸움으로 보아왔다.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 10여 개월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발생하자 유럽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하고 있다. 지난 11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는 "일본 정부 전범의 죄를 용서하다"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일본의 신민족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날 기자는 프랑스 언론사 아시아 담당자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피가로의 보도와 관련해 한국인으로부터 직접 보충 설명을 듣자는 것이다. 모 방송사 기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음을 시인하며 이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대부분의 지식층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최근 우리 정부는 국제적 여론 조성을 위해 외국 역사가와 언론인들에게 일본의 역사 왜곡 실태 자료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좀 더 일찍 했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옳은 결정이다. 아시아 전문 기자들조차 문제 파악을 못하는 상황에서 현지 여론의 긍정적 반응을 기대키란 어렵다. 유럽 언론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지금 각국 공관 주재 현지 언론 설명회도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파리=강혜구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