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축구경기 해설자가 골이 들어가지 않자 '골대 안으로 찼으면 골인(goal-in)됐을 텐데 골대 밖으로 차서 노 골(no goal)이 됐다'는 '축구'(등신이라는 뜻의) 같은 해설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밥 먹으면 배부르고 술 마시면 술 취한다'는 논리와 같이 너무 당연해 공기만 진동시키는 '소리'일 뿐이다. '골 결정력 부족이 한국축구의 고질적 문제'라거나 '농구는 순발력이 필요한 경기'라는 해설을 들을 때는 뭔가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골 결정력 부족'은 모든 팀이 언제나 갖고 있는 문제이며,'순발력'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모든 운동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되는 소리다. '백인은 인간이다. 흑인은 백인이 아니다. 고로 흑인은 인간이 아니다'의 결론은 말이 되지 않는다. 흑인도 인간이고,황인도 백인이 아닌데,'전체와 부분의 혼동'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코락스로부터 남을 설득시키는 수사학을 배우던 타시아스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지자 스승에게 약속한 수업료를 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재판관들 앞에서 코락스를 다음과 같이 딜레마에 빠뜨렸다. "코락스,당신은 내게 무엇을 가르쳐 준다고 약속했지요?/사람을 설득시키는 기술이었지/그럼 당신이 내게 그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면,내가 돈을 받지 말라고 설득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설득되지 않는다면,나는 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코락스는 반격에 나서 타시아스를 거꾸로 딜레마에 빠뜨렸다. "만일 자네가 나에게 한푼도 받지 말라고 제대로 설득하면 자네는 내게 돈을 내야 하네.나는 약속을 지켰으니까. 반대로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면,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돈을 내야 하네" 기원전 460년께 '변론술'을 쓴 그리스의 코락스에 관한 일화인데,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상대를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저의'나 '함정'이 있을 때 이런 '말이 되는데 안되는 소리'가 나온다. 지난 2월부터 넉달이 넘게 진행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6개 언론사가 탈세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여당은 이번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정당한 법 집행이고,국민의 72%가 '언론사의 탈세를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야당은 정당한 법 집행으로 볼 수 없고,국민의 56%가 '언론탄압'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세무조사의 배경에 대한 논쟁에서 '정권연장을 기도한다'거나 '정권욕에 사로잡혀'라고 서로를 비난하는데,정권을 잡기 위해 조직된 정당에 '정권욕'을 버리라는 것은 '술 마셔도 취하지 말라'는 논리다. 물론 '정당하게' 정권을 잡으라는 얘기로 해석되지만 하여튼 '말이 되는데 안되는 소리'다. 세무조사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썼다가 '곡학아세'하는'가당치 않은 놈'이라는 비난을 받은 어떤 소설가는 그에 대한 공격에서 '섬뜩한 살기'까지 느낀다고 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이토록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문제는 법과 원칙과 정도에 따랐느냐에 있는 것이지,세무조사에 성역이 있어야 한다거나 탈세를 엄정하게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골대 밖으로 차서 노 골'이라는 말과 같이,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두고 돈 써가며 여론조사까지 동원하는 이유는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저의'나 '함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저의'나 '함정'의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 모두가 '저의'와 '함정'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다. 자기가 꾸민 '저의'에 스스로 당하기도 하고,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기도 한다. '저의'나 '함정'을 깔고 보는 정치인에게는 안보여도 '제3자적인 입장'에서 '상식'으로 보는 국민에게는 말이 되고 안되는 것이 훤하게 보인다. 그래서 '민심이 천심'이다. 이제 '말이 되는데 안되는 소리' 그만 하고 모두가 천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