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은 외모가 비슷해 가려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공항에서만은 예외다. 짐 때문이다. 다 그렇진 않지만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의 휴대품에는 라면 김치 등 부피가 큰 게 많다.이와 달리 일본인 여행자들의 손에는 대개 한국의 면세점 쇼핑백이나 선물 꾸러미가 한두개 달랑 들려 있다. 인천공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무거운 짐을 끌고 끙끙대는 것과 달리 일본인 여행자들은 트렁크 하나만 들고 총총히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공항에서는 그러나 한국인 여행자들의 짐 내용이 달라져 있다. 부피는 비슷하지만 알맹이는 '메이드 인 재팬'이 대부분이다. 카메라 오디오 골프채 등 세계를 주름잡는 상품들이다. 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를 묵살한 후 일제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의 못된 버릇을 바로 잡기 위해 민간단체까지 나섰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잠시 짚어 보자.불매운동은 일본이 뻔뻔스런 짓을 되풀이할 때마다 양념처럼 등장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았다고 보기 어렵다. 일제 상품이 한국에서 쫓겨났다는 소식도 없었다. 오히려 수입선다변화 제한이 풀린 후 한국에서는 소형 카세트 등 '공업 한국'의 명맥을 잇겠다던 제품들이 사라졌다. 유통업체들의 상혼과 소비자들의 '재팬 넘버원'이 부른 결과다. 불매운동이 정말 일본을 혼내주기 위해서라면 소리없이,그리고 단단히 맘먹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전효과만을 노렸거나 한 순간의 감정적 대응에서 나온 것이라면 코웃음 대상만 될 터이니 더 그렇다. 주일 한국기업인들은 일본시장 진입장벽 중 하나로 소비자들의 끈질긴 자국상품 선호를 꼽는다. 한국의 전자회사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던 일본인 여강사는 그 회사가 녹음기를 만드는데도 불구, 상당수 사원들이 일제를 갖고 있는데 놀랐던 기억을 갖고 있다. 피켓과 머리띠의 불매운동이 뜨겁겠지만 소비자들이 일본을 진짜 반성시키는 길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안방에서 홀대하면서 일제를 짝사랑하는 편견을 마음에서 지우는데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