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기원전 5세기 고대 로마에선 '십이동판법'을 통해 도시 안에 죽은 자를 묻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540년 도시 밖에 매장하려던 주교의 시체가 꼼짝하지 않아 결국 성당 안에 묻힌 이후 교회의 직사각형 안뜰은 묘지가 됐다. 이후 1천년 이상 유럽의 교회안 묘지는 납골당에 쌓인 인골더미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유희가 이뤄지는 공공장소였다. 하지만 1744년 낭트의 한 교회에서 관을 운반하던 인부가 가스에 질식돼 숨진 것을 계기로 프랑스 사람들은 교회내 매장의 비위생성을 들어 묘지 이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1765년 5월 파리 최고법원은 파리 시내 밖으로의 묘지 이전에 관한 원칙을 확정했고,1776년 3월 10일자 매장에 관한 왕령은 교회와 도시 안에서의 묘소 취급을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1785∼1787년 파리시내 묘지에서 마차 1천여대 분의 뼈가 시 외곽으로 옮겨졌다. 당시 시외에 속하던 이들 장소는 불과 몇십년만에 파리시내로 편입됐고 급기야 19세기 중후반 다시 묘지 이전계획이 세워졌으나 상황은 뒤바뀌었다. 무덤이 결코 비위생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사람들은 묘지를 휴식과 수호의 공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1869년 로비네 박사는 '묘지 없는 파리'라는 저서에서 "죽은사람의 흔적인 묘에 대한 경배는 인간질서의 한 구성요소"라며 "묘지 없는 파리는 더이상 도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추모공원 부지로 서초구 원지동 일대를 확정하자 서초구와 구민이 고속도로 점거시위등 극한투생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서울시는 화장장이라곤 해도 냄새나 연기가 전혀 없고 인공호수 산책로 야외공연장 등을 갖춘 최고 수준의 휴식과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서초구 쪽에선 '그래 봤자 화장장'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묘지나 납골당에 관한 인식은 죽은 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선 오랫동안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여겨온 만큼 서초구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쯤 생각의 틀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