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왜곡된 역사교과서 재수정을 사실상 전면거부하고 남쿠릴열도 조업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성의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자칫 한·일관계가 정면충돌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98년 한·일정상회담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양국관계가 이처럼 궤도이탈 위기를 맞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정부의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에 대해 9일 일본정부가 보내온 공식답변서를 보며 우리는 일본 지도자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35개항의 수정요구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가 낮은 한국 고대사 두곳에만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을 뿐,군위안부 한일합병 강제징용 등 왜곡된 근·현대사 부분은 전혀 손을 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인즉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고 역사해석이나 표현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태도는 오만하다 못해 파렴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듯 하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서의 반성은 한마디도 없이 침략전쟁을 미화한 기술이 단순한 역사해석의 문제라니,주변 피해국들과의 관계개선은 포기한채 일본내 보수세력의 눈치만 살피겠다는 것인가. 일본은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거론하기 앞서 과거에 대한 무거운 책임에서 등을 돌리려해선 안된다. 남쿠릴열도 주변수역에서의 꽁치잡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일본정부는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이곳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려면 한·러 어업협정에 따라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조업을 해온 한국어민들에게 대체어장을 제공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일본은 대체어장 제공을 끝내 거부하고 있고 우리 어선들은 예정대로 오는 15일부터 조업을 강행키로 해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교과서 문제나 어업분쟁을 다루는 일본정부의 오만한 태도로 볼 때 한·일 공동선언의 정신은 이미 실종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정부도 장기적 안목에서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대일 문화개방의 연기와 고위당국자 교류중단 등도 필요하겠지만 중국 등 아시아국가들과 연대해 역사왜곡과 일본의 비도덕성을 연계시켜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는 적극적 전략이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흥분부터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단계별 대응책을 세우고 일본이 태도를 바꿀 때까지 꾸준하게 압박해가는 끈기가 필요하다.